우리는 서로를 만났다

돌봄이 아니라 자립을 배우는 시간

by 최국만


“오기종씨, 당뇨 측정하겠습니다. 아침 식사 언제 하셨나요?”


“오전 6시에 먹었습니다.”


“혈당 76입니다. 정상입니다. 혈압 재세요.”


110/70.


일단 오늘은 괜찮다.


지난주에 채혈한 결과를 들으러 온 날이었다.

의사는 말한다.


“당뇨, 혈압, 콜레스테롤은 정상인데요. 고지혈증이 있네요. 약 한 달치 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고기반찬의 이유


아침에 출근하면

기종이 어머니가 준비해 둔 점심 반찬이 있다.


돼지고기 볶음.

소고기 찌개.

고기 위주.


3년 넘게 봐왔다.

채소는 거의 없다.

김치가 유일한 채소지만 기종이는 그것마저 잘 먹지 않는다.


2년 전, 당뇨 수치가 높아졌을 때

나는 운동을 시키고 식단을 조심했다.


“아주머니, 육류만 계속 드시면 위험합니다. 채소를 늘려주세요.”


한동안 바뀌었다.

그러다 다시 고기.


“기종이가 자꾸 고기를 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나는 이해한다.

먹는 게 낙일 수 있다.

특히 선택권이 많지 않은 삶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이해와 안심은 다르다.


오늘의 고지혈증 진단은

그 식판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두 시간의 자유


내가 퇴근하면 오전 12시.

어머니는 오후 2시에 돌아온다.


기종이가 혼자 있는 시간은 두 시간.


그 두 시간은

그의 완전한 자유 시간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계란 한 판을 삶아 먹기도 했다.

믹스커피를 타겠다며 종이컵에 설탕을 반이나 부어 마셨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조금 더 일찍 누군가가

식습관을, 생활습관을

차분히 가르쳐 주었다면 어땠을까.


통제는 쉽다.

하지만 통제는 자립을 만들지 못한다.



이제는 ‘따라오게’ 하지 않는다


4년 차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기다린다.


샤워도, 정리도, 운동도

내가 시연하고

그가 직접 할 때까지 지켜본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그래야 몸에 남는다.


돌봄은 대신해 주는 일이 아니다.

돌봄은 스스로 하게 만드는 일이다.




어머니의 한마디


기종이 어머니는 올해 일흔이다.


“내가 죽으면 시설로 보내야지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 단단해진다.


기종이는 건강해야 한다.

자립해야 한다.


누군가가 떠난 뒤에도

혼자 살아낼 힘이 있어야 한다.




병원을 나오며


병원 문을 나서며 말했다.


“기종아, 네가 나를 만났고, 내가 너를 만났네.”


우리는 서로를 만났다.

그건 축복이다.


집 앞에 내려주고

백미러로 흘끗 보았다.


오른쪽 어깨가 조금 내려가 있다.

왼발은 약간 절룩거린다.


왜 체형이 저렇게 변했지?


다음 주엔 재활의학과를 가야겠다.


돌봄은 끝이 없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나의 다짐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


기종이는 의학 지식이 없다.

병의 위험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이제

보호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되려고 한다.


자립을 향한 동행.


오늘도 병원 진단서 한 장을 들고

나는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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