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된 차 안에서 지킨 방송의 이름으로

밀렵꾼을 쫓다 5미터 아래로 추락한 날, 방송인의 양심으로 꿰매기로 했다

by 최국만


2003년 봄,

나는 KBS 환경스페셜 '밀렵'을 제작하기 위해서 전국의 산과 들에서

밀렵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밀렵꾼의 도주 차량을 추적하던 어느 날,

굽이진 산길에서 차가 중심을 잃었다.


5미터 아래로 추락.

차는 전복됐고,

나는 조수석에서 오른팔을 내딛은 채 그대로 찍혔다.

스태프들은 무사했지만

나의 오른쪽 어깨 인대는 완전히 끊어졌다.


4시간 수술,

10여 일의 입원,

그리고…

취재 마감은 15일 뒤였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한 손으로 밀렵 현장을 지휘하고

팔을 고정한 채 KBS헬기에 올라 타

취재를 했다.

취재를 마치고, 이제 편집을 할 시간,

편집실에 도착한 내 몸은 부서졌지만,

내 마음은 부서질 수 없었다.


'밀렵' 방송은 나갔고,

환경부장관 표창과 환경운동연합이 언론인에게 주는

녹색언론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했던 건

카메라 밖에서 지켜낸 방송인의 양심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서서 병원 문을 두드렸다.


봄은 병원 창 밖에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겨울을 마무리 할 사이도 없이 봄을 맞았다 .


도시는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다가 재잘거리며 깨어난 계곡 물처럼 생기가 돈다.

봄은 흔히 화사한 빛과 생동감 있는 소리로 표현된다.

그러나 나는 향기라고 말하고 싶다.


양지 틈에 뾰족하게 드러낸 봄나물들이며, 낙엽 밑에서 야생초들을 보면 그러하다.


가만히 그 풀잎을 가져다가 코끝에 대어 보면 '아! 봄이구나.' 하는 햇살 같은 미소가 번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향기로운 봄을 병원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2003년 겨울.


충북 증평 야산에서 밀렵꾼을 추적하고 있었다.

폭설로 인해 산길은 빙판이 됐고 도로의 폭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우리 취재차량은 제보자의 승용차였음으로

눈길에 밀렵꾼의 사륜구동차를 추적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무리한 추적은 생명을 담보로 한 추적이 되고 말았다.


우리 차량은 5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고, 119 구조대에 의해 긴급구조되었다.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제작이 어려울 만큼 어깨 인대에 손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다른 제작진들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총지휘 감독자인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방송 일정이 잡히고 이미 중간 이상의 제작에 들어간

프로그램을 어떻게 종결시켜야 할지가 큰 난관이었다.

어깨를 다친 나는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취재가 끝나는 거의 한 달 동안

아내는 나를 취재현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때로는 새벽에 ,또 깊은 밤에 .


사실 아내가 없었으면 그 프로그램을 끝냈 수 없었다.

지금도 고맙고 감사하다.

모든 것을 접고 제작을 포기하기에는 1년여의 제작기간과 제작진의 노력이 너무 컸다.

그래서 그 때 나는 과감히 수술을 포기했다.


물리치료와 침술에 의지하며 팔을 고정시키고 다시 마무리 제작에 들어 간 것이다.

팔을 고정하고 산 속에서 진행한 제작과정과 한 달을 왼손으로 편집한 그 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했던가•••.

'밀렵'프로그램은 전 국민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환경부장관 표창 및 녹색 언론인상까지 수상했지만

날마다 나를 괴롭히는 어깨의 통증은 더하기만 했다.


그 후 2년 남짓의 시간이 바쁜 일상과 함께 흘렀다.

한 달 전쯤이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어깨가 더욱 아파 왔다.

결국 여러 병원에서 입원과 진찰을 반복한 후에 어렵게 단국대학교병원 외래 를 찾게 되었다.


3월 18일, 수술을 받았다.


관절경을 이용한 수술이라고 해서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4시간 만에 수술실에서 나왔다.

깨어보니 몸에 여기저기 구속이 많았다.

상처 부위를 감싼 드레싱이며, 팔을 고정한 장치,

팔과 갈비뼈 사이에 대어 놓은 베개 같은 물건, 무통제 주입장치, 링거 줄 등등··•.


나는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신체의 부자유함이 주는 고통이 왔고,

수술 다음 날부 터 곧바로 시작된 운동은 나를 더욱 괴롭혔다.

그러나 이런 시간 들 속에서 얻은 것도 많았다.

평소 급한 성격이었던 내가 쉬어 가 는 법을 배웠고,


장애인들의 고통도 실감을 했으니 말이다.

또한 병원이라는 작은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도 되었던 것 같다.

병원은 '시작'이라는 의미를 주는 공간인 듯 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도전과 계획을 서게 하는 계기를 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쉽게 하던 일들이 어려워지는

고통을 겪음으 로서 건강의 소중함도 알게 했으며,

나의 쾌유를 돕는 손길 속에서 함께 나누는 기쁨도 얻었다.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병원 문을 나서는 걸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건강이라는 선물을 받고 기쁘게 시작하는 시간.

나는 오늘 진정한 봄을 맞는다.


(지난 2003년 밀렵 취재 시 사고를 당하고 병상에서 기록한 병상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