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그물 속 수백 마리 생명, 그날을 기록한다

동면 앞둔 뱀들의 마지막 몸짓 위에 인간은 죽음을 던져놓았다

by 최국만



그물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엔,

수백 마리의 생명이 꿈틀거리며 서서히 질식하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면

뱀들은 겨울잠을 준비한다.

한낮의 마지막 햇살을 등에 받으며

먹이를 찾아 산기슭으로, 계곡 바위틈으로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본능의 길 위에

인간은 조용히 ‘죽음의 그물’을 펼쳐놓는다.

눈에 띄지 않게, 설치된 통발 수백여개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고,

얽히고 얽혀 통발 안에서 뱀들끼리 서로를 감으며 죽어간다.


살기 위해 몸을 감고 또 감아보지만,

그 움직임조차 스스로를 더 조이는 올무가 된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 죽음의 전주곡이 되는 장면.


올가을, 그물은 또다시 펼쳐지고

생명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뱀을 혐오한다.

그 독성, 그 형상, 그 본능적인 공포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오랜 취재 끝에 알게 되었다.

뱀 또한 생태계의 한 축이며, 뱀이 사라진 곳에서는 반드시 다른 균형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그날도 한 통의 제보 전화가 나를 불렀다.

“최PD님, 충북 음성과 경기도 경계인 광혜원 일대 산에 수십 킬로미터 길이의 뱀그물이 쳐졌습니다.”


나는 후배들과 즉시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향했다.

20여 분 비포장도로를 달린 끝에 산 입구에 도착했고,

제보자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늦가을. 바로 뱀들이 동면을 위해 굴로 들어가는 시기였다.

우리는 산을 10여 분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길고 조직적인 뱀그물망을 목격했다.


그물은 충북 음성에서 시작해 경기도 경계까지 이어져 있었다.

길이는 수 킬로미터에 달했고, 뱀그물은 단순한 사냥도구가 아닌

산을 장악한 산업형 밀렵장치였다.


보통 뱀그물은 야산에 100미터 남짓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게다가 그물 근처에는 어촌에서 문어를 잡을 때 사용하는 통발이 수백개 설치돼 있었다.

뱀의 귀소본능을 이용해, 동면을 위해 굴을 찾는 뱀을 통발로 유인하고,

그 안에 가둬 죽게 만드는 구조였다.


현장을 찾은 음성군 공무원도 혀를 내둘렀다.


“이건 단순 밀렵이 아니라 기업형 뱀밀렵 조직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통발을 열었다.

꽃뱀(유혈목), 밀뱀, 독사 등 다양한 뱀 종류가 들어 있었고,

개구리, 두꺼비, 기타 양서류와 곤충까지 무차별적으로 갇혀 있었다.

이미 많은 뱀은 죽어 있었고, 살아 있는 일부는 급히 숲속으로 방사했다.


죽은 생물들의 수를 세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그곳에는 자연의 한 질서를 무너뜨린 인간의 탐욕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 사건은 단지 뱀의 죽음만이 아니다.

뱀은 생태계의 중간 포식자다.

쥐와 개구리, 곤충을 조절해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뱀이 사라지면, 쥐가 창궐하고, 농작물이 망가지며,

그에 따라 맹금류와 다른 포식자들도 영향을 받는다.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연쇄적인 생태 붕괴의 시작인 것이다.


나는 수년간 밀렵과 밀거래를 추적하며 취재했다.

그 결과 충북 지역에서는 “최국만 때문에 밀렵을 못 하겠다”는 말이

밀렵꾼들 사이에서 돌 정도로 영향력을 미쳤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사람의 욕심보다 생명의 가치를 더 무겁게 생각하고 싶었던 내 직업적 고집이었다.


당시에는 출장 뱀탕, 뱀탕 전문 밀거래상,

심지어 건강원 지하에 뱀 사육 굴을 만들어 뱀탕을 끓이던 곳도 있었다.

전화 한 통이면 뱀을 갖다 주고,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정력에 좋다고 팔던 시대였다.


우리가 밀렵 현장에서 수거한 뱀만 수백 마리,

구조해 다시 숲으로 돌려보낸 개구리와 파충류,

그리고 그물에 엉켜 죽어가던 작은 생명들.


나는 그날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죽은 뱀들이 얽히고설켜 뒤엉켜 있는 통발,

텅 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개구리 한 마리,

그리고 곤충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빠져나가던 순간까지.


이 기록은 단지 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연을 도구화하고, 생명을 값없이 소비하는지를 고발하는 이야기다.


기록자는 묻는 자다.

우리는 언제까지 ‘몸보신’이라는 이름 아래 생태계를 찢고, 정력이라는 미신 아래 죽음을 정당화할 것인가.


뱀도, 개구리도, 곤충도

그 숲의 정당한 주인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 그 주인들을 위해

단 한 번이라도 펜을 들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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