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지도 못한 생명, 인간이 만든 함정 속에서
2001년 초 겨울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나를 불렀다.
환경단체였다.
서울지검과 함께 1년 넘게 지리산 일대 밀렵과 밀거래를 수사 중이며,
이제 마지막 수색과 범인 체포를 앞두고 있으니 밀렵 현장을 오랜 기간 취재해온 KBS의 최국만 PD와 함께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우리는 곧 경남 거창 지리산 일대로 향했다.
검찰 수사팀이 추적해온 마을 뒷산, 시각은 오전 7시경이었다.
이슬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오르던 그때,
고라니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정적을 찢었다.
오솔길 하나 없는 숲을 헤치고 달려간 그곳엔,
한 마리 고라니가 공중에 매달린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발에 올무가 채워진 순간 스프링이 작동해 몸을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일명 ‘스프링 올무’,
더 빨리, 더 확실하게 생명을 죽이기 위한 밀렵꾼들의 진화된 도구였다.
고라니의 다리는 이미 부러져 있었고,
입에서는 괴성과 절규가 번갈아 나왔다.
동행한 감시단원은 말했다.
“이 상태로는 거의 못 삽니다.”
우리는 올무를 풀고, 눈을 가려 포대에 넣었다.
혹시라도 살릴 수 있기를 바라며 산 아래로 내려가던 도중,
한 농가의 창고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 포대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다가가 열어보니, 고라니 두 마리가 더 갇혀 있었다.
집주인이 나왔다.
현장을 보더니 말이 없었다.
“밭을 파헤쳐서 잡았을 뿐”이라는 말 뒤에, 올무나 덫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양해를 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 천장엔 스프링 올무가 빼곡히 걸려 있었고,
부엌과 창고, 장롱 뒤까지 밀렵 도구가 숨겨져 있었다.
30여 개 이상의 스프링 올무, 20여 개의 철사 덫, 고정기구들.
우리는 이를 전부 압수해 검찰에 넘겼고,
고라니들은 현장에서 즉시 방사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우리를 더 놀라게 한 사실이 있었다.
지리산 인근 산들을 돌아다니며 추가 취재를 진행하던 중,
한 나뭇가지에 꽂힌 흰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이랬다.
“이 구역은 내 구역이니, 이곳에서 야생동물을 잡아가지 마라.”
말문이 막혔다.
지리산 일대에선 밀렵꾼들끼리 산을 구역별로 배분해
서로의 사냥터를 침범하지 않도록 암묵적인 규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범죄조직처럼 ‘자기 구역’을 표시하며, 생명을 포획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한국 내 야생동물 밀렵과 밀거래는 지금도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다.
밀렵된 고라니, 멧돼지, 오소리, 뱀, 반달곰까지
이들은 서울, 대전, 대구 등 대도시의 특정 유통라인을 타고 음식점, 약재상, 고급 개인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야생동물 밀거래 시장 규모를 연 2,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한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수치이며, 국제밀렵거래망(TRAFFIC)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여전히 ‘중요한 소비국’이자 ‘경유국’으로 분류된다.
그런데도 야생동물보호법은 여전히 여러 맹점을 안고 있다.
처벌이 약하고,적발 시 “자연보호 캠페인 참여” 정도로 마무리되며,
밀거래 브로커나 유통업자에 대한 추적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기록은 무기여야 한다.
그것이 생명을 대신한 마지막 목소리라면.
나는 여전히 스프링 올무에 걸려 괴성을 지르던 고라니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 고라니는 그날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 편인가요, 구경꾼인가요?”
나는 이제 더 이상 기록자이기만 한 채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증언하고, 고발하고, 바꾸고 싶다.
그래야만 다시는 그 산의 나뭇가지에 ‘여기는 내 구역’이라는 범죄의 언어가 꽂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