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이끄는 길
언젠가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내가 살고 있는 땅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익숙한 곳이지만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여러 풍경들은 낯설고도 새로웠다. 푸른 산과 강, 바다가 뚜렷하게 큰 골격을 이루고 있었고 산 능선이 흘러내린 곳에는 크고 작은 도시들이 산을 밀어내듯 들어서 있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섬세한 신경조직처럼 퍼져있었고 하나로 이어지던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길과 만나고 또 다른 길로 접어들며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들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그동안 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거나 모르고 지났던 길들이 선명히 드러났고 길 위로 깨알 같은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도시 근처를 지날 때 눈에 익은 골짜기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 속으로 나무 아래에서 등이 굽은 낯익은 사내 하나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내가 사는 땅이 저렇게 생겼구나, 내가 저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아아, 나는 왜 저곳에 있는 것일까?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늘을 지나는 내내 산속에 살고 있는 사내가 마음이 쓰였다.
어릴 적 집에서 십여 리 떨어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걸어 다녔다. 9년 동안이나 반복된 통학길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흔히 겪었던 일이지만 어린아이들에게 매우 지루하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길을 오가며 들이는 시간과 수고에 비해 공부에 들이는 노력과 의지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무엇보다 안타까워했던 것은 넓은 바다와 산을 버려두고 좁은 교실에서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도망치듯 바다로 산으로 달리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학교로 오고 가는 길은 두 군데였다. 동구 밖 언덕을 지나면 버스가 다니는 넓은 신작로가 있었고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길을 선택할 수 있어 걷는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 신작로는 직선 위주의 길이라 빨리 닿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걷는 동안 단조롭고 지루했다. 굽이를 돌면 작은 마을이 순서를 기다리듯 나타났다 물러서고 길 너머로는 또 다른 산이 막아설 뿐이었다. 가끔씩 나타나는 버스의 내뿜는 매연과 흙먼지가 눈을 따갑게 했고 우리는 큰 백양나무에 매미처럼 바싹 달라붙은 채 흙먼지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다리가 아프거나 걷는 일이 지루해질 때마다 혹시 마음씨 좋은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차를 세워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이 신작로를 선택한 것은 산길보다 힘들지 않고 시간도 짧게 걸린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산길은 좁고 오르막길이 있어 힘든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산마루에 오르면 눈 아래로 넓은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땐 하루라도 바다를 보지 않으면 허전하고 답답했다. 바다를 보면서 걷다 보면 내 앞에 뭔가 희망적이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매일 똑같은 생활, 똑같은 일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산을 향하는 오르막길은 가팔랐고 종종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 가쁜 시간을 넘어야 했다.
바다라는 선물을 얻기 위해서 “ 힘내! 조금만 더 가면 돼!”라며 숨가빠하는 친구를 독려했지만 실은 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기도했다. 그렇게 힘겹던 오르막이 끝나고 편편한 산마루에 접어들면 앞으로 다가서는 모든 것들이 유순하고 우호적인 상태로 변해있었다. 흥미를 잃어 불편했던 수업시간, 오르막길의 고통은 까마득히 잊혔고 능선을 걷는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신바람이 일었다. 완만한 경사로 돌아가는 산길 모퉁이에는 때때로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새들은 신이 난 듯 앞서서 날며 지저귀곤 했다. 다리 밑에 살고 있는 거지들이 배고프면 산에 와서 따먹는다는 진달래꽃은 향긋하고 달달했다.
낮은 언덕을 돌아가면 느닷없이 넓고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꼬리가 긴 해안선과 맞닿아 있는 바다는 끝간 데 없이 이어졌고 바다 가운데에는 정물처럼 배들이 떠 있었다. 바다는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바다 한가운데로 가끔씩 큰 배가 지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잠잠했던 바다는 큰 너울이 생겨나며 출렁거리곤 했다. 작은 배들이 일으킨 너울은 금방 지워졌지만 큰 배의 너울은 뚜렷하게 출렁이며 해안으로 밀려와 찰싹찰싹 맑은 소리를 냈다.
우리는 나란히 언덕에 앉아 바다에 파문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배를 바라보곤 했다. 배가 사라져 가는 그 먼 곳을 상상했다. 작은 마을, 작은 존재, 작은 꿈, 우리는 아주 작은 곳에 머물러 있을 뿐이며 작은 촉수로 세상의 변방을 더듬거릴 뿐이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에게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큰 배의 너울이 퍼져가듯 누구에겐가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날을 꿈꾸었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배를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해지곤 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어릴 적 가고 싶어 했던 그곳인지 알 수 없지만 산길을 오르면 단 번에 온 몸을 열어젖히던 푸른 바다가 지금도 어른거리곤 한다. 산길을 오르는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그 푸른 바다도 떠가는 배를 바라보는 일도 꿈을 꾸는 것도 모두 헛된 것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 어느 것이든 고난을 극복해야 진정한 가치가 생겨나며 그런 과정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름답지도 귀하지도 않은 듯하다.
어쩌면 이 땅에 수많은 산이 존재하는 이유도 힘겹게 넘어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든 앞에 놓인 길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방황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릴 때의 내가 그랬듯 지금도 자유로운 인생을 꿈꾸지만 자유롭기 위해서 겪어야 할 고난을 생각해보면 내 꿈은 그리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흔히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때가 되면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어려움이 나타날 것이다. 잔잔한 바다가 거친 파도를 숨기고 있듯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은 항상 고난을 동반하기 마련이며 우리의 삶이란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