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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일주일(1)

Ⅰ. 영국의 봄은

by 심재훈

* 이 글은 2020년 2월에 런던을 여행하고 나서 쓴 수필입니다.


Ⅰ. 영국의 봄은


국가마다 그 표현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다. 이렇게 정의해보고 싶었다. 국가마다 그 국가를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이 존재할 수 있다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막 시작하기 전, 나는 지인 한 명과 영국 여행을 떠났었다. 유럽 여행은 난생처음이었고, 그만큼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설렘이 가득했다. 단지 일주일이라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는 그 일주일의 시간이 나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영국을 여행지로 점찍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나는 유럽지역을 꼭 여행할 것이라고 계획하고 있었다. 문화재와 고대 유적지를 관광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영국과 이탈리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실, 이탈리아를 더 가고 싶었던 이유는 과거 르네상스의 중심지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거장의 미술가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유럽 여행이었기에 마음 편히 다녀오고 싶었나 보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국이 어쩌면 좀 더 편한 여행지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연 초에 영국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미 늦은 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여 각자의 캐리어를 챙기고 숙소로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벌써부터 문제점에 부딪쳤다. 일부 지하철 노선이 파업사태로 인해 운행을 중단된 거였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부터 영국 파업사태까지 유럽은 노동자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우리나라도 최저시급 문제가 계속 대두되고, 이슈화되는 걸 보면, 노동자 문제는 단순히 국지적인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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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나의 설렘을 모두 채워주고도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토록 문화적인 나라를 경험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새로운 연인을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만큼 영국의 새로운 면을 알아가는 것은 너무나 흥미롭고 즐거웠다. 나와 지인은 일주일 동안 런던 시내에서만 머무르기로 결정하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보통 여행객들은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국가들을 관광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영국이었던 처음이었던 만큼 런던에만 머물며 도시의 분위기를 깊이 느껴보기로 했다. 사실 런던이라는 하나의 도시를 알아가는 데 있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음악과 공연, 건축과 거리는 나의 어린 동심을 불러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런던의 건축과 거리는 무엇인가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매력이 있다. 고층 빌딩은 별로 없었다. 뭉툭하고 가로로 퍼진 건물들은 마치 조금 통통한 앳된 아기 같았다. 어려서부터 한국의 높은 아파트 건축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런 런던의 수평 중심적인 구도가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더 넓은 하늘과 공기를 누리고 마실 수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서울은 사람과 기술을 중심으로 건물이 배열되어 있다. 하지만 런던은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도시가 설계되어 있는 느낌이다. 대형 박물관, 유명 인사들의 동상과 문화유산들은 마치 자신들이 주인공인양 고개를 들고 있었고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변의 기업이나 회사 건물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인위적으로 그 문화를 느끼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거리의 향기가 내 마음을 노크했다. 해리포터와 호빗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도시 속에서 왜 런던이 세계 문화의 중심지라고 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경이로웠던 순간은 런던에 위치한 현대 박물관 테이트 모던 방향으로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널 때였다. 밀레니엄 브릿지를 기점으로 앞에는 테이트 모던이, 뒤에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 위치했다. 건축물들은 자로 잰 듯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이때만큼 그것들이 사람처럼 느껴지는 때도 없다. 양끝에서 대성당과 테이트 모던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주변의 건물들은 하인처럼 두 왕을 모시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대성당 쪽을 바라보면 돔이 하늘색 민머리 동산 같이 가장 정중앙 높은 위치에 있었다. 하등 상관없는 얘기지만 일전에 다녔던 학교 정문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 정문에서 바라보면 백양로를 쭉 따라가다 세 개의 지붕들이 순서대로 등장한다. 언더우드 관, 연희관, 그리고 상경관으로 갈수록 키가 커진다. 그래서 정문에서 지긋이 쳐다보면 위압감이 느껴진다. 캠퍼스가 더 위대하게 보인다. 처음부터 저렇게 짓지는 않을 것이다. 일종의 전략이다. 덕분에 세인트 폴 대성당은 더 찬란했다. 나는 여기에 잠시 다녀가는 하객에 불과하다. 칭찬과 박수의 대상은 바로 영원히 남을 저것들이다. 저것들은 자신들이 이 도시의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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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 박물관 테이트 모던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내부 건축은 현대적인 골조로 이루어져 있었고, 굉장히 깨끗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현대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평소에 고전 미술작품을 주로 보았던 나는 여기 현대 작품들이 조금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졌다. 단순한 그림 작품도 있었지만, 사진이나 여러 도구들을 이용한 미술 작품들도 많았다.

수 개의 전시관을 돌아본 이후에 조금 지쳐 몸을 추스르려고 할 즈음에 나와와 지인은 우연히 백남준 특별전을 보게 되었다. 부랴부랴 티켓을 사서 전시관에 들어갔다. 백남준 선생님은 한국 국내에서도 현대미술로 이미 유명하시지만, 오히려 해외에서 더 대우를 받는다. 평소에 그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특별전을 통해 백남준 선생님의 미술 철학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백남준 선생님은 기술과 철학을 접목시키는 예술 작품들을 많이 만드셨다. 특히 불교 사상을 기술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기술이란 반드시 유기체적 속성을 내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이란 인간적인 요소와 자연적인 요소가 함께 융합되어 완성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예술철학이었다.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들은 정말 흥미롭게 느껴졌다. 텔레비전을 이용해서 특정 정치인을 비판하는 작품도 있었고, 아무 재료 없이 사람들이 소리만 들음으로써 작품을 이해해야만 하는 작품도 있었다.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었다. 작품은 텔레비전에서 닉슨의 연설 장면을 담고 있었다. 약간의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닉슨을 비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여론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걸 지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진실이 왜곡되고, 왜곡된 진실은 대중을 호도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느낌이 물씬 드러났다. 물론 선생님이 작품을 만드실 땐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되기를 바라지 않으셨을 것이다. 관람객들이 한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기를 더 원하시지 않았을까.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해야 할 건 그저 이 시간을 즐기는 것뿐이다.

전시 관람을 하면서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의 철학이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구온난화와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는 이 시대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자연보존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 그리고 앞으로의 기술발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왔던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이슈를 인류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기술발전과 자연이라는 가치의 공존. 서로 양립하는 가치 사이에서 인류는 미래에 어떠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제한된 원료와 에너지는 계속해서 고갈하고 있다. 앞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지구환경은 풍요롭고 안정될 수 있을까? 예술 작품을 통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연보존의 중요성을 더 많이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예술은 예술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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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 차가 되고 나니, 영국인들의 자기 문화에 대한 애착 또는 프라이드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과거 제국주의의 시작이었고 문명의 발상지였다는 자부심이 그들의 평소 외국인을 대한 냉소적인 태도에서 묻어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먼저 외국인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는 먼저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았다. 뭐, 이는 어느 나라나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조금만 넘어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곳에 가면 그래도 조금 다르지 않을까. 여행객에게 친절하고 먼저 관심을 가져다주는 나라. 아, 그렇다면 너무 골치가 아프려나.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는 점으로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어쨌든 여기 영국인들은 대부분 시크했다.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으로 열연했던 영화 <노팅힐>의 실제 노팅힐 서점을 방문했을 때에 그런 냉담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나는 평소 동경하는 C.S. 루이스의 책들이 여기에 있냐고 서점 직원에게 물어봤다. 직원은 작가는 알고 있지만 우리 서점에는 그 책이 없다고 단칼에 잘라 말했다. 조금 친절하고 따뜻하게 말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처음엔 조금 서운했지만 못내 괜찮은 척 나 자신을 타협했다. 영국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 내 느낌이 꼭 맞다고 할 순 없다. 여러분들이 직접 들러보시기를 … (이제 코로나 시대가 도래했으니 꿈도 못 꿀 일이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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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지인은 일주인 간 미술관 중심으로 투어를 마무리했다. 영국 대영 박물관, 테이트 모던, 내셔널 갤러리, 버킹엄 궁전, 피카델리 서커스 거리, 코번트 가든,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 스타디움까지 진이 빠질 정도로 걷고 또 걸었던 것 같다. 어렵게 일주인 간 토트넘 홋스퍼의 2경기를 연이어 볼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경기가 있다는 건 박싱데이가 아니고서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손흥민 선수는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여 2골을 넣었다. 영국 현지 팬들의 뜨거운 응원 소리는 직접 가보지 않는 한 절대 느껴볼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다. 한국의 스포츠 문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야구팬들과 비슷하려나. 그래도 여기 런던 축구 열기에 비벼보려면 아주 극성맞지 않고는 상대도 안 될 거다. 런던 사람들은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돈을 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정도로 축구는 그들의 인생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축구를 본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경기장을 찾는다. 내가 만약 영국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피카델리 서커스 거리는 런던 내에 각양각색의 식료품점, 레스토랑, 서점, 백화점, 영화관, 극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각종 버스킹 공연들도 볼 수 있다. 나는 체력이 허락한다면 그 거리를 계속 걸어 다니고 싶었다. 물론, 밤 10시가 되면 모든 교통수단들이 끊기기 시작하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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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문화는 인간의 삶에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이다. 문화가 없다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피와 땀을 흘리지만 문화를 통해 정신과 감정을 새롭게 갱신한다. 삶을 노동의 시간으로만 채운다면 점차 무기력해지고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말 거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삶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대략적으로 가늠한다. 문화생활을 하다 보면 나의 직업과 업무의 특성이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 어떻게 정의되고 표현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문화를 다르게 정의한다면, ‘개인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하나의 사건이나 물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내면의 눈을 뜨게 해 준다. 그리고 그동안 알고 있었던 세계 바깥에 무언가를 가리킨다. 이후에 우리는 깨닫는다. 이전에 알고 있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인생이란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를 천천히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 그 자체라는 것을. 한 마디로 우리가 걸어가는 길 자체가 문화가 될 수 있다. 아니, 우리 자신 자체가 문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것은 문화생활이 영국인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라는 점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극장과 연주 홀들이 번쩍번쩍한 네온사인과 함께 빛나고 있다. 특히 피카델리 서커스 쪽으로 가면 더 유난을 떤다. 위키드. 맘마미아. 알렉산더 해밀턴. 오페라의 유령 …. 각종 뮤지컬 포스터들이 평소보다 더 큼지막하게 보인다. 사진으로만 보던 뉴욕 스퀘어 거리가 이와 같지 않을까 상상해봤다. 암표를 파는 상인부터 시작해서 몇 걸음 단위로 세워져 있는 티켓 부스들이 런더너의 문화를 향한 열정을 대변해준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영국인들은 그들의 문화유산을 금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조금 명성 있는 선조들이라면 웬만하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 물론 실제로는 당연히 그렇진 않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정말 수없이 많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왕족들부터 군인, 성공회 사제 그리고 시인들까지. 아마 워즈워스는 분명 거기에 있었을 거다. 그런데 바이런도 거기에 있었나? 아마 있었을 거다. 온갖 오명에도 불구하고. (난 바이런의 시는 좋아하지만 그가 정말 영웅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거기에 새겨진 그 이름들이 모두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영국인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다. 그들에게 영웅이지만 우리에게는 역적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특별히 악감정을 품을 만한 게 없지만. 프랑스인들이라면 어떨까? 하여튼 영국인들은 가슴속에 수많은 영웅들을 품고 산다. - 영국인들의 이러한 매니아적인 수집 경향은 대영 박물관을 감상하면서 알 수 있다. 세계대전을 겪어오며 그들이 가져온 문화유산들은 아시아부터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과거 제국주의의 심장이었던 만큼 대영 박물관에서의 전시는 한국인으로서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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