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파도를 잡다

세상 모든 것들은 계획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by 공음
축하합니다!
최종 면접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합격 통지서를 눈앞에 두고, 기쁨 대신 내 인생의 '지연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메일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한 프로그램에 합격 소식을 전달받았다.

역설적이게도 소식을 들은 동시에 기쁨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앞서 다가왔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지난 12월 전역을 하고, 이번 3월에 3학년으로 복학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당 과정은 학기와 병행하기 어려운 스케쥴이었고, 관계자는 휴학을 권장했다.


나는 이때 사실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타인과 비교하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스스로 되새기던 나였지만

재수에 군휴학까지 생각하면 3년이라는 시간이 늦었다고, 하나 둘 졸업하고 취직하는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다가오는 심리적 압박감은 나의 의지와는 달랐다.




휴학가지고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야?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3년은 인생에 있어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을 거라고.

나도 내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피부로 느껴보니 그 막연한 불안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알고 있다.

아무리 많은 고민을 하고,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포기한 기회비용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후회할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덜 후회할 쪽'을 선택하며 나아갈 뿐이다.




나만의 파도에 올라타다.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컫는 용어가 있다. "파도를 잡는다."

그리고 서핑의 가장 큰 매력은 "매번 잡아서 타는 파도가 다른 파도"인 것이다.


많이 타보면 어떤 것이 좋은 파도인지는 대충 알 수 있단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직접 파도를 잡아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내가 잡은 이 파도가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타고 싶은 파도를 기다리는 것보다 여러 파도를 타보면서,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믿고 싶다.


모두가 가르키는 방향이 있어도 무작정 따라가지 말자.

모두가 같은 해변에 서 있다고 해서 같은 파도를 타야 하는 건 아닌 것처럼.




나는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선택하는 그 순간, 당신은 인류 전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그의 '선택의 무게'는 수많은 선택지에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선택지가 없는 것과 같다고 나에게 다가왔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망설이다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내 삶에 어떤 선택지도 없음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멈춰 있는 '휴학'일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내 생애 가장 거대하고 짜릿한 파도를 타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균형을 잡는 중이다.


나에게 있어 이번 선택은 단순히 속도를 늦추는 결정이 아니다. 내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내가 원하는 파도를 책임지고 타내겠다는, 가장 능동적이고도 실존적인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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