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이름’은 단순한 신분을 식별하는 수단이 아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때로는 그의 존재를 정의하는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선혜’라는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 어떤 이름보다 특별하다. ‘선혜야’라고 불릴 때, 나는 어느새 내 안에서 뭔가 깊고 묵직한 감정을 자각하게 된다. 그건 단순한 불림이 아니라, 내 존재와 역할에 대한 무게를 실어주는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선혜’는 ‘책임감’과 ‘기대’가 함께 담긴 이름이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항상 기대감을 담아 나를 바라보았고, 그 기대는 자연스레 내게도 전해졌다.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 내가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내 이름은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언제부터인지 조금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선혜’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 그 이름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확신을 준다. 그래서 ‘선혜’는 언제나 내 안에서 “그래,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힘이 된다.
이제 나는 그 ‘책임감’과 ‘기대’를 조금 더 나의 ‘자기 돌봄’으로 바꾸고 싶다. 더 이상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를 짓누르는 책임감만 느끼지 않길 바란다. ‘선혜야, 오늘은 너부터 챙겨야 해.’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선혜야, 잘하고 있어. 하지만 쉬어도 돼.’라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려 한다.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 안에 담긴 ‘기대’와 ‘책임’을 내 방식으로 풀어내고, 내 안에서 나를 다독이며,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항상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내가 그 이름을 부를 때,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선혜’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책임’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따뜻한 다짐과 자기 사랑을 함께 느끼고 싶다. 내 이름이 나를 불러낼 때, 나는 더 이상 그저 해야 할 일만이 떠오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아끼고 돌보는 사람으로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내 이름은 진정으로 나를 정의하는 이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