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차 샘플이 도착했다.
손에 쥐는 순간, 오래 붙잡고 있던 숨을 천천히 내쉴 수 있었다.
완벽하다고 말하긴 조심스러웠지만, 적어도 이제는 “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보다 결심이 앞서는 지점에, 비로소 도착한 느낌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샘플을 반복해 수정하는 동안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지금 당장 생산을 시작해도 빠르면 11월, 늦으면 12월.
이 제품이 가장 빛을 발해야 할 여름은 이미 지나 있었고,
계절로만 보면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비수기라는 현실은 마케팅으로 풀어야 할 숙제였다.
업체에 컨펌을 날려 생산을 요청했고, 동시에 또 하나의 전쟁을 준비했다.
상세페이지였다.
온라인에서 제품의 운명을 가르는 건 결국 상세페이지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설명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내가 디자인 툴을 다룰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은 제품 업체에서 제공한 이미지로 어떻게든 버텨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우리 로고가 박힌 첫 제품,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었다.
받아서 쓰는 이미지는 없었다.
모든 걸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촬영과 상세페이지를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업체들을 찾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각 업체를 찾아가며 미팅도 했다.
결과는 늘 같았다.
좋지만, 비쌌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엔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았고 마침내, 조건과 방향이 맞는 한 업체를 만났다.
이곳이라면 함께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산 일정이 밀리면서, 섭외해 둔 지 거의 3개월이 지나서야 촬영이 가능해졌다.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제품은 여름의 공기를 담아야 했다.
야외 수영장, 햇빛, 해변.
그런데 한국은 이미 가을이었다.
빛도, 공기도, 분위기도 여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알아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견적은 상세페이지 비용을 훌쩍 넘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현실적으로 선택지는 하나였다.
직접 가는 것.(직접 가면 비용이 최소 5분의 1은 줄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장비도 없었다.
DSLR 카메라도 없이 샘플을 가방에 넣고 해외로 향했다.
야외 수영장과 해변을 오가며 땀을 뻘뻘 흘려가며 촬영했다.
엎드려 찍고 이상한 자세로 촬영을 해대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모델을 쓸 여유도 없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잠깐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 순간들은 간절했고, 어설펐고, 솔직했다.
거절도 수없이 당했다.
그나마 외국인이라 덜 부끄러웠다.
촬영할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숙소로 돌아와 사진을 열어보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역시 사진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스튜디오 촬영이 진행됐다.
카메라 앞에서 포토그래퍼와 구도를 맞추고,
소품을 바꾸고, 빛을 조정하며 한 컷 한 컷을 쌓아갔다.
상세페이지도 수차례 수정 끝에 점점 형태를 갖춰갔다.
글자 하나, 단어 하나, 이미지의 위치 등 수없이 바꿨다.
약 2주 뒤, 마침내 상세페이지가 완성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제품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끝난 줄 알았는데, 마지막 문턱이 남아 있었다.
11월 중순.
드디어 제품이 도착했다.
준비해 두었던 상세페이지를 업로드했고,
조심스럽게 판매 버튼을 눌렀다.
우리의 로고가 새겨진 첫 번째 제품.
수많은 고민과 선택,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의 결과물.
이제야 비로소,
출발선 위에 서 있었다.
이건 끝이 아니라, 진짜 시작이었다.
전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