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나?
성경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이 있다. 어릴 적에 나는 그 말이 너무 신기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상했다. 청각 장애인이 아니면 다 듣는 것 아닌가? 귀가 뚫렸다고 다 제대로 듣고 깨닫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은 좀 더 자라서였다. 우리말에는 듣는다는 것이 한 단어 밖에 없지만 , 영어에는 hear와 listen 두 가지 단어가 있다. 그 차이에 대해 중학교 대 영어 선생님이 설명해 주신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hear는 물리적으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청각 장애가 없는 한 누구나 hear는 가능하다. 그러나 listen은 듣는 내용에 대해 인지하고 지식으로 축적하는 것을 의미한단다. 커가면서 알게 된 것은 그냥 듣는 사람 은 많아도 listen이 가능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see만 가능한 사람이 곳곳에 정말 많다. watch가 불가능한 인간들이 소위 말하는 식자 층에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라니..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한글 덕에 문맹률이 낮은 나라이지만 그냥 쓰여있는 것을 읽을 뿐 이라나... 하긴 예전에 가게를 할 때 점심시간이라 써 붙이고 안에서 밥을 먹는데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때문에 애먹은 일이 많았다. 작지도 않은 종이에 점심시간이라 써 붙였는데 점심시간이니 문이 닫힌 것은 당연함은 그들의 상식에 없는 것 같았다.
이 말을 왜 하느냐... 팩트는 한 가지인데 선택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르지 않을 텐데 고장 난 라디오 같이 구는 사람들.. 여러 해 전 타진요 패거리를 보고 알게 된 것이다. 아 세상에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결과만 그런 소리만 중요한 사람이 많구나. 그런 사람들에겐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에 맞는 진실이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배웠다. 이런 세상에서 상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미 배웠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놓은 그 자리에서 진실이 중요하지 않으면 다른 이의 아이디를 도용해 게시판에 글을 썼을 것이라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런 궤변이 법대 교수의 입에서 나왔다. 나 같은 얼치기 법학도도 뭐가 진실인지 분별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정석적 사고만 한다고 비판을 받았다. 때문에 세상을 살기가 참 힘들었다. 나이를 한참 많이 먹어버린 지금 세상적 기준으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상식을 지키고 살아온 삶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