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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Aug 15. 2023

81화. 인프피 엄마에게 모임이란

16년 전, 대학원 지도 교수님의 추천으로 처음 MBTI 검사를 했었다.

결과는 ENFP.

교수님은 나를 보면서 정말 '전형적인 ENFP'라며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수십 번 들먹였다.


"우리 조교가 MBTI 검사에서 ENFP 결과가 나왔는데 정말 ENFP의 표본이다." 라면서

MBTI의 공신력을 높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ENFP의 단점이 내 단점과 부합했을 뿐이다.)


최근에 MBTI라는 것이 유행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무슨 유형이냐고 자꾸 물어보길래

십몇 년 만에 다시 검사를 해봤다.

결과는 INFP.

I 내향적이고.

N 직관적이며.

F 감정적인.

P 인식형.

E에서 I로만 바뀐 것 같지만 둘의 차이는 확연하다.

예전에는 ENFP랑 딱 맞았는데, 이제는 INFP랑 딱 맞아. 소르음.


여하튼 그렇게 또 몇 년을 살았다. 애를 낳고 나서 보니까 성향이 달라진 것 같아서 찾아보니까 이제 나는 INFJ와 INFP 사이다. 어쩔 때는 INFP 같고, 어쩔 때는 INFJ 같고. 섞여버렸다.


내향형의 특징은 변하지 않고 더 견고해졌다.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관계를 맺기 싫고

친구를 만날 때도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커피숍에 콕 처박혀서 깊은 대화나 나누고 싶고

다수의 모임보다 3명 내외 소수의 만남을 선호하는데

사람 많은 모임에 나가면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어, 간다는 말도 없이 중간에 집으로 가버리는 사람이 나다.

웬만하면 집에 있는 게 좋고, 틈새 육아 시간에 도서관에 박혀서 책을 읽거나,

일기 쓰고 공상하고 요리하고 그러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사람이 육아를 하려니. 아니, 육아하면서 사람들과 엮이려니 고역이다.

자기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와서 아이랑 같이 놀아주겠다는 친구가 부담스럽고

아이를 보러 집으로 놀러 오겠다는 친구들이 무서워서 연락을 피하고

놀이터에 가서 동네 엄마를 만나면 어색해서 쭈뼛거린다.

단톡방을 싫어해서 친구들과도 하지 않는데, 언젠가 어린이집 단톡방에 강제로 초대되었고

일일이 대꾸하는 게 귀찮아서 알람을 꺼버렸다.

매일 몇 십 개씩 채팅방에 글이 쌓이는데.. 읽는 게 고역이라 아예 확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못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그중 한 엄마가 자꾸 모임을 하자는데 벌써부터 현기증이 난다.

아마 만날 약속을 잡으면 며칠 전부터 몸이 아프겠지.

몇 명 되지도 않는 원생인데, 벌써 '엄마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아,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감정소모를 하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류의 에너지 소모다.


회사에 다닐 때처럼,

'쟨 원래 유별나다', '독특하다', '이기적이다', '서울깍쟁이다' 소리 들으면서 마이웨이로 살고 싶다.


아마도 멀지 않은 미래에,

나와 남편은 모임에서 동떨어져서 지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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