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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Feb 03. 2023

69. 매일, 국지전을 치른다.

끝없는 육아전쟁

2023년에는  게으른 마가 되자는 다짐을 했다.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하려니 엉덩이 잠시 붙일 틈이 없다. 하루종일 혼자만 바쁘다. (그런데 살은 안 빠지는 게 아이러니)


아기 밥하고 남편 밥하고

아기 빨래하고 내 빨래하고

아기 설거지하고 내 설거지하고

아기 씻기고 나 씻고

따로따로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집안일은 다 두 배가 되었다.(아니 세 배, 네 배일지도)


집안일도 벅찬데 온 집 안을 해 집고 다니는 아들을 쫓아다니느라 하루가  간다.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사고다.


일단 서랍을 열어 물건을 꺼낸다. 이맘때 아이들이 물건을 끄집어 꺼내는 게 흔한일이라지만 기저귀 쓰레기통을 뒤질 때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며칠 전에는 똥기저귀를 꺼내서 바닥에 던지는 걸 보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없어진 물건이 종종 재활용 쓰레기통 안에서 발견된다.

뚜껑을 손으로 돌려 딸 수 있다. 아주 정교한 손놀림은 아니지만 며칠 전에는 굴소스의 뚜껑을 따서 먹었 어제는 올리고당을 바닥에 쏟았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물을 만지려 한다.

빨래대에 빨래를 널고 나면 슬며시 다가와바닥으로 끄집어 내린다.

빨래를 개고 있으면 다 풀어헤친다.

플랭크 하면 옆에 와서 까꿍하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면 배에 올라탄다.

책을 읽으면 구기거나 찢는다.

휴대폰을 하고 있으면 와서 뺏어간다.

티브이를 보면 리모컨을 눌러 다른 채널로 돌린다.

화분을 뽑고 때로는 이파리나 흙을 먹는다.

현관에 가서 신발 맛을 본다.


사고치는 게 끝이 아니고, 숨바꼭질 하는 걸 좋아해서 계속 숨어있으라고 한다. 그렇게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진다.

아들이라서 에너지가 넘치는 건지, 애들이 다 그런 건지 정말 모르겠다.


놀아주는 게 힘은 들지만, 귀여우니까 봐준다 아들아



육아를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 직장동료와 멀어진 지금은 새로운 인간관계에 매료되었다. 적당히 가까우면서 먼 사이.

조금 가볍고 얕지만 선을 넘지 않고 딱히 기대도 없고 깊은 속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람.

매주 만나는 에스테틱 선생님과 필라테스 선생님이 나에겐 그런, 부담 없는, 쉼을 주는 존재다.


필라테스는 일대일 강좌로 시작한 지 벌써 8개월쯤 되었는데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나이도, 이름도, 사는 곳도..

사실 내내 마스크를 끼고 만나서 본 얼굴도 모른다. 그래서 더 편하다. 처음에 코로나로 인해서 마스크를 쓰는 게 참 불편했는데 어느덧 마스크를 끼고 사람을 만나는 게 왠지 모르게 더 편안하다.

 

육아를 하면서 인간관계도 사치가 된 것 같다. 육아 후 남은 1퍼센트의 에너지를 인간관계에 쏟고 싶은 생각이 다.(그냥 쉬고 싶다.)

중요하지 은,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사람들을 쳐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좀 더 가벼운 관계 만들기에 전념할 생각이다.

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면서.

보이지 않는 마스크를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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