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눈이 펑펑 내려

by sej

2023.12.20 12:54 AM

밖에 나가려고 하다가, 내일 학교 갈 생각에 까마득해졌다. 날씨 뉴스를 찾아보다 내일 되면 알겠지 하며 노트북을 덮었다. 피곤한 얼굴의 가족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다들 방에 들어가 집이 조용해질 때쯤, 급하게 이어폰을 꽂고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조금 끓이고 핫초코 분말을 서둘러 컵에 부었다. 작년 생일 선물로 받은 니트 모양 컵을 한참 찾았다. 물을 붓고 휘저어 우유도 조금 넣었다. 컵을 들고,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그리곤 가장 깊숙이 있는 창문을 열고, 몽땅 다 활짝 열고, 밖을 봤다. 하얗다. 정말.. 정말 하얗다.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펑펑 펑펑 내렸다. 하늘에서 멈추지 않고 눈이 내린다. 안경을 뒤늦게 쓰고 오니 안경에도 눈이 앉아 내린다. 손을 뻗어 눈을 만지고 싶다.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눈에 신이 난다. 그저 행복하다. 진부한 캐럴보단, 기다려왔던 노래를 튼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밖을 한참 바라본다.

여러 생각이 든다.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 거리에도 이런 허름한 동네에도 겨울은 이쁘구나. 눈이 오면 모든 걸 덮듯, 그저 하얀 것들만 보여서 그런가. 아름답다. 지나가는 차들, 몇몇 사람들. 인사하고픈 심정이지만,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족하다. 핫초코는 어느새 차가워지고, 한 모금 마셔보니 언제 따뜻했냐는 듯. 창틀에 팔을 기대고 또 한참. 노래 끝자락에 ‘눈’을 반복하는 노랫소리를 따라 한다. 행복하다. 의미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러지 않으려 한다. 그저 행복할 뿐이다. 이 순간을 남기려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별거 없지만, 참. 행복한 한 해였다. 정말, 과분한 한 해였다. 가슴 저 안쪽까지 저릿할 정도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눈만 마주쳐도 포근한 세월을 그리게 되는, 누군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눈을 선물로 준비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별 거 아니지만 너무 수고했다고 토닥이는, 선율 하나에 마음이 부드러이 따라 올라가는, 시리도록 추워도 가슴 한켠이 뜨거웠던, 그런 한 해였다.

이번 2023년은 수상소감처럼, 마치 다시는 이렇게 행복할 수 없을 거라 장담하고픈 한 해. "이보다 더 좋긴 힘들겠다" 하고 푸스슥 웃을 수 있는 한 해였다. 이 글을 비치는 그 순간에도, 이걸 읽는 모두에게도, 스치는 모두에게, 차 한 잔 내듯 행복을 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