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내 곁에
얼마 전 정형외과를 다녀왔습니다. 어릴 적부터 뼈가 약했던 저는 정형외과에 자주 드나들었죠. 이제는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정형외과에 다녀왔습니다. 늘 고질병이었던 무릎이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허리가 말썽이라 진료를 받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척추에 이상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릴 적 틀어졌던 뼈는 그대로 굳어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돌려낼 수 없답니다. 허탈한 웃음을 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저녁, 내일 아빠의 기일을 앞두고 납골당에 다녀올 계획을 세우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다 엄마가 조심스레 운을 떼며 친할머니 얘기를 했습니다. 얼마 전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친할머니와는 못 본 지 오래지요. 친가족들, 아빠의 가족들은 얼굴을 안 본 지 오랩니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없는데도 친가족들과 잘 지내왔습니다. 이번엔 동생의 생일로, 지난번엔 연휴를 맞아서, 우리 가족은 자주 그 집을 다녀왔죠. 그중에 저 혼자만 오랫동안 왕래를 멈춰왔습니다. 아빠의 기억이 떠올라서였을까요. 몇 년 전부터 저는 앞으로 할머니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상처가 도저히 아물지 않아서였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빠가 위독해졌을 때. 엄마는 병원에서 아빠의 간호를 해야 했고, 저와 언니, 동생은 고모가 돌봤다가, 이모의 집에 맡겨졌다가, 할머니 집에서 지냈었습니다. 방학이라 다행히 조금 멀리서도 지내기에 무리가 없었죠. 학원에 다녀올 때면 할머니 집에서 가방을 챙겨 나오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렇게 우린 조금씩 엄마와 아빠가 없는 삶에 적응해 갔죠. 나의 보호자가 없고, 벽과 지붕이 없는듯한 곳에 말이에요.
머지않아, 아빠는 정말 생사를 오갔고. 할머니는 위독한 아들을 보며 점점 이성을 놓았습니다. 아빠는 수학여행에 다녀오면 가족들 끼니를 때울 생선을 사 오곤 했던, 이 집의 기둥과 같은 장남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그 마음을 나는 이해했습니다. 아주 가난하고 못살았던 집에 늘 힘이 돼줬던 아들이, 너무 젊을 때, 나보다 이르게, 이 세상을 떠날 듯하니, 마음이 애통했겠죠. 나는 점점 그 솟구치는 고통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성을 놓아가던 할머니는 점점 무서워졌습니다. 그 고통을 나에게 돌리기 시작했죠. 밥도 편히 먹지 못했고, 편히 자지도, 그저 앉아있지도 못했습니다. 늘 나에게 아빠의 상태를 논하며 내가 편히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어린 나는. 그 말이, 그 눈이, 그 모습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집엔 내 엄마도, 아빠도 없었던 걸요. 난 어디에 털어놓을 수도, 고자질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기어코 내 가슴에 큰 상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 사회생활도 하는 나에게도 여전히 너무 아픈 상처로 남아 내 가슴을 찌릅니다.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용서해 보는 게 어떠냐는 엄마의 말을 듣고선, 방금까지 웃고 있던 나는 눈물을 주룩 흘렸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미 할머니를 용서했는걸요.
나는 아직 그 아이를 품고 사나 봅니다. 아물지 못하고 잘 흘려보내지 못한 채, 끙끙 소파에 머리를 묻고 눈물을 몰래 흘렸던 그때 그 아이가 아직 내 안에 있나 봅니다. 어떤 말로 그 아이를 위로할 수 있을까요. 너무 늦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지금의 내가, 시간이 지나 커버린 나는, 그 아이를 위로할 수 있을까요?
화장실에서 몰래 울고 있던 그 아이에게, 난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무엇이 미안한지는 모르겠네요.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요.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미안할 게 있다면, 그 상처가 잘 아물도록 만져주지 않아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빠를 잃어서 슬픈 그 마음, 슬프고 아픈 것이 맞으니 편히 슬퍼하렴. 그저 가만히 슬퍼해도 좋아. 그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2025.04.24.
아빠를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쓸모없는 상상을 해보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