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학교문화와 성적 중심의 서열화
지난 글에서는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한국 공교육의 학습하기 어려운 수업방식에 대해 경계선 지능인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문화제국주의적 교육체제에 기반하여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학교 문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본 내용은 필자의 학술연구 자료인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화 경험에 관한 연구: 청소년기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를 참고하여 참여자의 인터뷰 자료를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공교육체제: 학교 문화
학교는 하나의 문화양식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현재 공교육체제에서의 학교문화는 경계선 지능인의 인지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화된 규범과 기대에 맞추어 행동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경계선 지능 학생들의 개별성을 인정하기보다 평균적 학생상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과 특성을 문제로 규정하며, 이들을 관계와 활동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으로 힘들었던 야외학습
경계선 지능인은 배제적인 이동 환경과 규범 속에서 대중교통 이용이나 단독 외출 시 실천적(adaptive) 기능의 제약과 불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2023). 연구참여자들 역시 학창시절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학교에서는 가끔 외부활동을 진행했는데, 해당 장소까지 학생이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파악하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불안과 당혹감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과 일상 기능 수행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학생이 동일한 자율성과 판단력을 갖추었다는 전제하에 설계된 학교의 획일적 문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어딘가 가는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어려워서 다른 애들이랑 같이 가려고 했는데 그게 힘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대중교통을 잘못 타면 큰일 날 것 같은 불안이 있었어요. 혼자 어디 찾아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연구참여자A)
제가 지하철을 혼자 못타서.. 그래 가지고 어쩔 수 없이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를 따라서 이제 어쩔 수 없이 갔단 말이에요. 근데 이게 좀 힘들었어요. 지하철을 못타다보니.. 지하철에 내렸을 때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안나는 거에요. 그래서 그때 울었어요. (연구참여자B)
낮은 기억력으로 인해 준비물을 자주 잊어버려 난처했던 공동체 활동
연구참여자들은 학창시절 준비물을 챙기지 못해 곤란을 겪었던 경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부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과 인지적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학생이 동일한 수준의 자기관리 능력을 갖추었다는 전제 아래 운영되는 학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준비물 미지참에 대한 학교와 또래의 반응은 실수를 학습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보다 결함으로 낙인찍는 방향으로 작동하였으며, 이는 학생의 심리적 위축과 학습 활동 참여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과제라던가.. 필수 준비물을 깜빡해서 긴장이 되고 땀이 난 적도 있었어요. 제가 깜빡한 적이 많았어요. 지금은 덜한데. “애들아 내가 그걸 깜빡했어. 미안해”라고 했던 적도 있었어요. (연구참여자C)
잘 못 찾았어요. 핸드폰이라든지.. 지금도 그렇긴 한데. 학교에서도 애들이 엄청 뭐라 했죠. “너 바보냐?”라고 뭐라 하기도 하고. 준비물 안 가져오거나 깜빡하면 뭐라 하고. (연구참여자D)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 빚어진 친구 갈등
경계선 지능 청년들은 과거 학창시절, 타인의 입장과 상황을 적절히 파악하지 못해 발생한 친구와의 갈등과 부정적 관계 경험들을 이야기 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의사소통 실수나 개인적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경계선 지능인의 사회적 해석 능력과 대화 규범 이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학생이 동일한 사회적 규범과 대인기술을 갖추었다고 전제하는 학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연구 참여자들은 또래관계에서 반복적인 오해와 거부를 경험하였고 결국 집단따돌림이라는 심각한 배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따돌림도 당했어요. 제가 나대는 게 기분이 나빴다고 했어요. 친구들이 모였을 때 너무 제 주도적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 그 녀석이 배를 쎄게 쳤어요. … 서로 맞는 것을 내가 찾지 못했나.. 제가 좀 급했던 것 같아요. 다른 환경에 와서 빨리 친해지고 싶다라는 마음. (연구참여자F)
제가 애들이랑 엄청 친해지고 싶어서 얘기를 하려고 하면 피하니까.. 할 얘기가 없는데 딱 생각난 것이 한 친구의 손목에 흉터. 자해 흔적이었던 것 같아요. 핑계가 될 수 있지만 그 얘기를 했는데 얘기하면 안되는 것이었어요. 애들이 놀라면서 "너 왜 그러냐" 라고 하면서.. (연구참여자G)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공교육체제: 성적 중심의 서열화
현재 학교 공교육 제도는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을 구분하고 서열화하고 있다. 그로 인해 경계선 지능 학생은 낮은 성적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하위 집단에 배치되거나 별도의 반으로 분리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학생의 학습 수준을 유연하게 지원하기보다 능력을 변하지 않는 서열로 고착시킬 수 있으며, 성적표와 같은 평가는 또래와 가정에서 부정적 비교와 낙인을 촉발하게 된다.
갈수록 바닥으로 떨어진 성적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성적이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점부터 나타난 성취도의 급격한 저하는 중·고등학교에 이르러 주요 과목에서 최하위 등급에 머무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학교의 성적평가는 경계선 지능인의 학습 의욕과 참여를 더욱 약화시키고, 학업적으로 무능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형성하게 된다.
국어랑 영어는 바닥을 쳤어요. 7,8등급 정도... (연구참여자 H)
초등학교 6학년 올라오면서 성적이 뚝 떨어지고 중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바닥이었죠. (연구참여자 I)
성적에 따라 배치받은 낮은 반
또한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은 학창시절, 학업 성취 수준을 기준으로 한 집단 배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하위반에 편성되는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배치는 학습 지원을 위한 수준별 수업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학생의 능력을 고정적으로 규정하고 열등한 집단에 속한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특히 영어나 수학 등 주요 과목에서 낮은 반에 지속적으로 배치되는 경험은 학습 의욕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하위 집단에 속한 학생으로 정체화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수업 편성 절차를 넘어 학생의 자기인식과 자존감, 나아가 장기적인 학습 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어쪽도 특수반인가, 영어 잘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갔는데 거기서도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잠을 잤고.. (연구참여자 J)
저는 죄다 향상반이었죠. 특히 수학과 영어. 향상반에 배정받았을 때 그냥 그러려니 했어요. 예상해도 뻔했으니까요. 아 나는 뭐 향상반이지. 중고등학교 되면서 성적이 내려갔으니까. (연구참여자 K)
프랑츠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특정한 지식 체계 안에서 특정한 행위, 실천, 몸짓, 혹은 특성들이 특수한 문제현상으로 출현된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공교육 제도는 특수교육대상자(등록 장애인)뿐만 아니라 경계선 지능인도 정상의 범주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정교한 지식 체계를 구축하여 현재까지도 경계선 지능인을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주체화 하고 있다. 문화제국주의는 이처럼 노동 분야 뿐만 아니라 교육 분야로도 개념을 옮겨와 충분히 재구성될 수 있으며, 장애인 범주에 아직 정책적으로 포섭되지 못하고 있는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화 현상을 읽어내는데 특히 유효할 수 있다. 맥네이와 앨런은 권력관계 연구에서 그 권력에 종속된 사람들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Tremain, 2020). 공교육 제도라는 권력 안에서 경계선 지능인이 포용될 수 있는 환경제반에 대한 변혁을 이룩해내기 위해서는 전문가, 부모들에게 그 문제현상의 해결 촉구를 맹신하며 대변자를 찾을 것이 아니라 경계선 지능인 당사자들의 경험적 시선들을 읽어내기 위한 노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사회학자 존 맥나이트(John Mcnight)는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고 하였다. 한국의 공교육 제도와 같은 문화제국주의적 교육체제가 경계선 지능인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화 구조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결국 문제로 규정되고 있는 경계선 지능인들이 그 문제를 직접 들여다보며 해체하고 이를 재조립해나가는 응시의 힘부터 먼저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 글은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장애화 개념 중 '차별'과 '폭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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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2023). 경계선지능 청년(성인) 선별을 위한 체크리스트 개발 학술연구용역.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Tremain, s (2020). 푸코와 장애의 통치 (박정수, 임송이 역). 그린비 출판사 (원출판연도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