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공교육 : 학습하기 어려운 수업방식
지난 글에서는 억압과 배제로 점철된 사회구조적 현상에 대해 필자가 명명한 '장애화된 사회'에서 '장애화'라는 개념에 대해, 그리고 Iris Marion Young의 억압 개념 중 하나인 '문화제국주의'라는 개념을 먼저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한국 공교육 체제에 대해 경계선 지능인의 관점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겠다.
* 본 내용은 필자의 학술연구 자료인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화 경험에 관한 연구: 청소년기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를 참고하여 참여자의 인터뷰 자료를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공교육체제 : 학습하기 어려운 수업방식
학교는 모든 학생이 개별적 특성과 발달 속도에 맞추어 학습의 기회를 보장받고, 사회적 참여를 위한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적 책무를 가진다(Florian et al., 2011; UNESCO, 2017). 하지만 지금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방식은 인지적 특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계선 지능 학생들이 학업적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이로 인해 대다수의 수업에서 경계선 지능인들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학습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암기 위주의 학습 활동
필자의 연구에 참여했던 경계선 지능 청년들은 학창시절 가장 힘들었던 수업 경험으로 암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학습 활동에 대해 진술하였다.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 효율적인 암기 전략 사용이 어렵고 정보 처리와 조직, 장기 기억의 사용에 제한이 있다(Jankowska et al., 2012).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암기 중심의 학습과 평가를 요구하는 교육 환경은 경계선 지능인에게 구조적 불리함을 초래하게 된다.
"저는 외우는걸 잘 못해서 시험 볼 때도 거의 못 외웠고.. " (연구 참여자 A)
"그래도 풀기는 풀었는데 굳이 외워야 한다니까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 (연구 참여자 B)
고도의 신체 협응 활동들로 인해 어려웠던 체육시간
경계선 지능 청년들은 학창시절 힘들거나 기피했던 과목으로 체육을 언급하며 이에 얽힌 부정적 경험을 진술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이 기억하는 체육 활동은 대부분 경쟁과 팀워크를 전제로 운영되는 종목(예: 이어달리기, 농구, 피구)이었다. 이들은 상황을 신속하게 인지하거나 손과 눈의 협응력을 고도로 요구하는 과제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는 빈번한 실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실수는 팀 전체의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또래로부터의 압박과 비난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반복된 경험은 체육시간을 단순한 신체활동이 아닌 심리적 부담과 불안의 원천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결국 활동 참여 의욕을 저하시키게 된다.
중학교 때 달리기를 하다가 보통 바턴을 터치하면 슬라이딩을 하거나 그런 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슬라이딩해서 양 옆 볼에 돌이 박히기도 하고. 그 정도로 바턴 터치하는 법을 잘 모르고.. 그리고 체육시간이 되면 저는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보건실에 있었고. (연구 참여자 C)
체육시간이요. 몸쓰는 것이 자신이 없어서. 저 때문에 애들이 점수 못 받으면 곤란했어요. … 농구할 때가 특히 그랬는데 농구 자체가 저한테 어려웠어요. (연구 참여자 D)
뭔가 팀별 활동을 했을 때 제가 잘 못하거나 그러면 뭐라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경쟁이 싫어서 체육 활동을 되게 싫어했어요. (연구 참여자E)
우선적으로 싫었던 것은 체육이요. 피구할 때마다 애들이 저만 뭐라하고. (연구 참여자 F)
어려운 단어들로 인해 독해가 힘들었던 국어시간
한 참여자는 국어 수업에서 난해한 어휘와 복잡한 문장 구조로 인해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잦았다고 진술하였다. 특히 초기에는 국어 과목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읽은 내용을 이해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독해에 대한 자신감은 계속 저하되었고 이는 낮은 학업 성취와 점수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국어 수업은 긍정적인 흥미의 대상에서 부정적 경험이 각인된 과목으로 전환되었다.
국어가 싫었습니다. 복잡해 보이니까 글 읽는 게 어려워요. (연구참여자 G)
국어는 처음에 좋아했었어요. 이야기 같은 것도 있고 그래서 되게 재밌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갈수록 어려운 거예요. 그 글들도 약간 읽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분명 처음엔 쉬웠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그게 되게 어려워지니까 뭔가 읽을 때도 계속 봐도 이해가 안 가고 그래서 점수가 좀 안 좋고. (연구참여자 H)
추상적 개념들로 인해 이해가 어려웠던 수학시간
연구에 참여한 청년들 중 절반은 공통적으로 다른 과목보다 수학을 특히 어려운 과목으로 인식했다고 진술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이 경험한 수학 수업은 추상적인 개념과 복잡한 기호 체계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는 높은 수준의 인지적 처리 능력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수업 구조는 연구참여자들에게 과도한 인지적 부담을 주었고, 개념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학습 흥미가 점차 저하되었다.
수학은 원래 못했지만.. 미적분이나 확률과 통계 같은 것이 나오니까 이게 무슨 기호지? 계산하는 건가? … 싫었던 과목은 수학이었어요. 들어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연구참여자 I)
수학 문제는 이해하는 게 특히 어려웠습니다. (연구참여자 J)
수학은 제가 계속 뒤에서 잤죠... (연구참여자 K)
*기사 참고자료: 경계선 지능 초등생 수학 문제 못 푼다고 때린 교사
이처럼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평균 지능지수에 속한 학생을 중심으로 설계된 공교육의 획일화된 교육체계와 경쟁 중심의 입시제도는 지배적 집단의 인지적 특성과 학습 방식, 교육 목표를 정상으로 규정하고 그 외의 인지적 다양성을 지닌 학생들을 배제하고 있다. 이 같은 보편성의 강요로 인해 경계선 지능인은 학교생활 내 불이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이들의 어려움은 공교육 제도 안에서 능력 부족이나 의지 부족의 문제로 환원되는 등 ‘비정상적 존재’로 위치화되고 있다. 결국 경계선 지능에 속한 학생들의 어려움은 개인의 결함 문제가 아니라 문화제국주의적 교육체제가 만들어 낸 사회적 문제이며, 이는 장애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문화제국주의적 교육체제에 기반하여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학교 문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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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Florian, L., & Black-Hawkins, K. (2011). Exploring inclusive pedagogy. British Educational Research Journal, 37(5), 813–828.
Jankowska, A. M., Olejnik, M., & Nęcka, E. (2012). Strategies of memorization and their influence on the learning process among individuals with 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Learning and Individual Differences, 22(6), 856–861.
UNESCO. (2017). A Guide for Ensuring Inclusion and Equity in Education. Paris: UNE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