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님 Jan 10. 2023

불러도 대답 없는 너

대량 주문을 하고 사라져 버린 당신에게

책방에서 단체주문, 그러니까 대량 도서주문은 운이 좋으면 1년에 한두 번쯤 있는 일이다. 학교, 공공기관 등은 도서를 구입할 때 500만원 이상은 자체 시스템이나 나라장터를 통해 공개입찰을 하도록 국가계약법으로 정해져 있고, 이 금액 미만으로 구매 하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난 달 경기도 지역번호가 찍힌 전화를 한통 받았다.

 

"안녕하세요. 땡땡도서관 땡땡땡 사서선생님이 너의 작업실이 일을 잘하신다고 소개해 주셔서 연락드렸어요. 블라블라~. 예산은 300만 원입니다. 급한 건이니 내일까지 견적서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책방 생존과 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나는 300만 원이라는 말에 300만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신이 났다. 연신 네네, 그럼요! 친절하게 응대했다. 그런데 이번 주문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보통은 구매할 책의 목록을 기관에서 정해서 책방으로 보내주는데, 구매할 도서 목록을 작성해 달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경제, 창업 분야 등으로 카테고리만 정해주었고 그 분야 베스트셀러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 우선 반려인 홍님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고, 롱패딩을 사주겠다고 잘난척 좀 했다. 퇴근길 노트북을 가방에 욱여넣었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목록을 정리하니 약 200권 정도가 되었다. 밤 11시 3분 메일을 보낸 후 잠이 들었다.


참고로, 기관 도서주문도 대부분 10% 할인 적용을 하기에 300만원 도서판매시 책방에는 대략 60만원의 수익이 남는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쯤 다시 전화를 받았다. 목록에서 2만 원이 넘는 고가 도서, 2023년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도서는 빼달라는 등 소소한 요청이었다. 어디를 다녀올 일이 있어 오후 3시까지 수정된 견적서를 보내겠다는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어서 예산을 다시 200만원으로 맞춰 작성해 달라는 발신을 할 수 없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예산이 100만원 줄었지만 그쯤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급했다. 책방에 도착하자마자 요청 내용대로 견적서를 수정하고 오후 3시쯤 메일을 보냈다.


그 후로 5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났다. 분명 급한 건이라고 했는데 2주가 넘도록 답이 없으니 불안한 기분이 되었다. 찍힌 번호로 전화를 해 볼 용기는 나지 않고, 다시 한번 차후 일정을 알려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왜 연락이 없을까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우리 책방을 소개해 주셨다는 사서 선생님께 조심스레 카톡을 보내 보았다. 선생님도 얼마전 바쁘신 부서로 발령받아 더 물어보기도 미안했다. 포기하려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 주문처에 메일을 보냈다. 도서구입 목록을 작성하고 수정하는데 서점원의 시간이 적어도 3시간 이상 소요되었다는, 읍소를 가장했지만 누구의 시간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은 내용이었다. 구매를 할 수 없는 여러가지 사정이 기관에 있을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기다리지 않도록 답이라도 달라고 덧붙였다. 단어를 오래 골라가며 적었다. 마지막 메일을 보낸 건 이틀 전, 꼬박 3주가 된 오늘도 답은 없다.


어제 저녁 홍님에게 고민상담을 했다. 홍님은 책방에서 보내준 목록을 일부 수정만 해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냐고 했다. 내선번호를 알고 있으니 메일이 아닌 전화를 해보라고 세상 답답한  눈빛을 쏘았다.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고 이유가 궁금한건 맞지만 용기가 없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일도 우스울  같았고, 빌려준 돈이 있는 것처럼 따져 묻는 일도 자신이 없었다.  응답이 없냐는 원망의 말을 숨긴  정중하고 온화한 목소리를  배짱도 내겐 없는 것이다. 홍님에게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니까 잊어버릴래."

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그는  응답이 없을까? 무심코 내가 결례가 되는 행동을  것일까? 이유라도 알려주면 좋겠다.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  글을 쓰고 깨끗하게 잊을테니 부디  먹고 잘살아 .


# 표지 책 사진 : 마르타 바르톨, <하나의 작은 친절>

매거진의 이전글 팩트체크! 책방운영 왜 어렵다고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