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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May 20. 2024

시시콜콜한 이야기

"5년이나 했으니 이제 됐다. 이제 할 만큼 했다 책방 접고 시골로 내려가자!"

일요일 저녁 잠옷바람으로 소파에 앉아 홍님에게 말한다. 그간 무수한 경험으로 내 공수표에 단련된 홍님은 미동도 없이 대꾸한다.

"응 그러던지"


요 며칠 사이 손님이 부쩍 줄어든 것 같아 우울하던 차였다. 하루 꾸준히 40명만 찾아 주어도 현상유지가 가능한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일까. 부지런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며 맛있는 디저트도 만들어내고 음료도 다양하게 내어 놓으면 사정이야 조금 더 나아지겠지만 나는 어쩐지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 우리 책방을 누군가 카페라고 부르면 탐탁지가 않은데 음료와 디저트에 신경을 쓰다 보면 서점 일은 뒷전이 되고 정말로 카페에 한 발 가까워져 버리고 말 것 같아서.


출근도 퇴근도 삐쩍 말라 푸석거리는 동태가 된 것 같은 상태로 하자니 즐거울 일도 새로울 일도 없다. 그저 한 톨 먼지가 되어 공기 중을 부유하는 것 같은 요즘의 나 요즘의 책방.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처럼 매주 월요일 아침 미지 작가님이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작년 8월부터 나오기 시작한 윤마리님이 말을 건넨다.

"탱님! 지현님이랑 셋이 술 한잔 해요!"

 잡아놓은 날짜는 빠르게 다가와  이선균과 아이유가 술 마시는 장면을 촬영했다는 책방 인근의 아늑한 술집 '코주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테이블 위 이야기의 주제는 고양이부터 독서모임까지 광범위하다. 책방에서 오가며 마주치긴 여러 번이지만 제대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 서로에게 궁금한 점은 질문을 주고받는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면 한 사람은 왜 이렇게 몸이 말랐냐고 밥을 많이 먹으라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손을 휘휘 저으며 아니라고 서로 예쁘다고 하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진다. 어린시절 엄마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나를 보며 왜이렇게 야위였냐고 자주 말하셨는데 그것이 사랑이고 아끼는 마음었던 것을 느꼈던 기억이 슬며시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찌질했는지 아냐며 경쟁하듯 말하다가 누군가 감정이 북받쳐 그렁그렁 울면 휴지도 건네고 어깨도 쓰다듬어 준다.


대화 주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책방 이야기인데 두 사람은 시든 화초에 물을 주듯 칭찬 세례를 퍼붓는다. 지현님은 일산에 정이 들지 않았는데 너의 작업실 때문에 좋아졌다고 했고 마리님은 친한 사람들끼리만든 울타리같은 관계에 매몰되기 쉬운데 너의 작업실은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열려있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했다. 팔이 안으로 굽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나의 입 꼬리가 광대 끝까지 올라가며 그에 부응하듯 중얼거린다.

"이렇게 생전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술을 마시며 사는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저는 그게 좋아서 책방 하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각자 살다가 힘든 일 있을 때 서로 불러서 이렇게 이야기 나눠요."


너무 소중해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릴까봐 5년 꼬박 매일을 전정긍긍하며 지켜낸 나의 책방, 우리의 작업실.



누구나 어깨 위에 저마다의 짐이 있다. 그 무게가 버거워 다 그만두고 싶고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도 많지만 가끔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짐을 아주 잠깐씩은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서로의 치부를 속속들이 다 알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길 원하는 밀착된 관계보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다가 기쁜 일 슬픈 일 있을 때 짠하고 나타나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관계가 우리 인생에 더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울긋불긋한 얼굴로 집에 돌아와 홍님에게 말한다.

"있잖아. 오늘 사람들이 나한테 책방 주인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고 하더라.(큭큭) 책방에 오는 손님들이 다들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아무래도 마리, 지현님 때문에 책방 더 해봐야 할 것 같아."  

홍님이 게임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이번에도 심드렁하게 말한다.

"응, 그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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