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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May 21. 2019

'삶과 소비의 재발견'

'부적응자'라 쓰고 '휴직자'라고 읽다.

늘 무언가 되기를 꿈꾼 소녀

스무 살 무렵 ‘국어 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이라는 이름에 발을 걸치고 사는 직업이 무척이나 근사해 보였거든요. 하지만 내 의도와는 달리 꿈은 저만치 떠나갔습니다. 경제적인 이유였습니다. 아버지의 병시중을 드느라, 1남 6녀를 건사하느라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살아오신 어머니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즈음의 내 어머니는 그럴 힘조차 없이 늙고 나약해 보였습니다.

     

고3 때 취업을 나가 삼보컴퓨터 공순이로 1개월을 지냈습니다. 기숙사와 회사를 오고 가며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처럼 사는 것은 어렸던 제게 지독한 경험이었습니다. 결국 더 견뎌내지 못하고 얼굴이 새하얘져서는 백기를 들었습니다. 중도에 포기했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며 대기업과 선생님께 사죄해야 했고, 다행히도 선생님은 큰 나무람이 없이 다른 일용직 공무원 자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며 5개월간 350만원을 야무지게 모았습니다.

     

혼자 준비하는 입시. 대학을 고를 때 제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돈이 적게 드는 국립대일 것, 교직 이수가 가능할 것.’ 결국, 아침 아홉 시에 출발하면 저녁 여섯 시에 도착하는 군산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빛나는 문예 특기생으로 말입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컨테이너 자취방에는 정읍과 대전에서 온 예쁘고 꿈 많은 여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습니다.

잔인하게도 한 학기가 끝나자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던 굳은 다짐은 민망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실업계 출신인 덕분에 학습능력도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그 와중에 학보사와 동아리 활동은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과대를 하겠다고 용감하게 나선 건 왜인지. 돌이켜 보면 그저 한 학기로 끝나고 말 대학 생활이란 걸 예감했기에 모두 누려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정의롭게! 

TV 드라마에서 배운 대로 포기는 없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농협 총무과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총무과에서 잡무를 보는 작은 일이 주어졌지만 어린 마음에 유니폼이 예뻐 흡족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농협에서, 저녁에는 호프집에서 빡시게 두 탕을 뛰었습니다. 아침 일곱 시에 시작해 새벽 3시에 마감되는 삶을 3개월쯤 살았을까요? 비록 고단했지만,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란 믿음이 저를 지탱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무렵 주변 분들이 대규모 공채가 있는 공기업에 입사 지원을 권유해 주셨습니다. 기업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저는 망설였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접수 마지막 날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예상외로 결과는 ‘합격’. 그렇게 저의 안정된 삶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습니다. 대규모 입사인 만큼 회사보다는 학교에 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동기들중 제일 나이가 어렸던 탓에 ‘막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점차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하늘은 예쁘지만 철조망은 그렇지 않아. 5월의 호수공원. 


안정이라는 이름의 괴물

이때쯤이었을까요? 안정이라는 이름의 괴물과 마주하게 된 건. 차곡차곡 월급이 모이니 정선 읍내에 어머니께 작은 집을 장만해 드리겠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습니다. 더불어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감각도 생겼습니다.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내 삶은 원하는 방향 대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제 모습은 찬물에 담구어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탈출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마는 개구리와 같았습니다. ‘그 무엇’이 되겠다던 다짐은 그렇게 짧은 수명을 다했습니다.

     

한데 어느 날부터인가 직업적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했고, 내가 속한 집단 또한 희망이 없다는 사실과 매일 마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회의감이 월급이 주는 안락함을 이기지 못했나 봅니다.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며 16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잠시 멈추어서 자신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저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회사 밖을 나오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무용의 사람 말입니다. 아! 잘하는 것이 딱 한 가지 떠오르는군요! 그것은 바로 ‘백화점 또는 인터넷 쇼핑’입니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버튼을 눌러 단시간에 해치우는 신공을 발휘합니다. 허황된 소비로 마음속의 부족함을 채우며 16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살았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잡다단한 이유로 16년의 직장생활에 큰 마찰음이 있는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이유는 후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한데 용기 있는 많은 분처럼 퇴직원을 내던지지는 못하고 대신에 휴직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16년을 매일같이 오가던 곳에 가지 않으니 온갖 불안한 생각이 몰려들었습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그곳이 나를 다시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좋아하는 과자 하나조차 마음껏 사 먹지 못했던 스무 살 시절의 가난이 나를 다시 찾아오는 건 아닐까 몹시 두려워졌습니다.

너무 편안해서  놓치기 싫은 이 소파의 안락함이란. 은둔형 외톨이와 동거중인 '꽃달님양'



그저 숨만 쉬어 ‘돈’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면?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니 그 월급이 제게 준 안락의 위력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한 달에 지출되는 고정비가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그동안 하고 싶지만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는 사실도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라도 불러야 할 지경입니다.


그저 숨만 쉬어도 세상은 돈. 그저 돈이라 외칩니다. TV홈쇼핑에서는 “이것만 구매하면 네 삶이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다며 버튼을 누를 것을 귀가 따갑도록 종용합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할까 절망스러웠습니다. 꼰대와 꼰대가 서로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오로지 가식이라는 무기로 중무장한, 약자라는 것을 간파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인정사정없이 물어뜯고야 마는. 흉악한 좀비들이 득실대는 그곳 말입니다.

     

그냥 부자 말고 시간 부자

그 무렵, 우연히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만 벌기로 결심했다.’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전직 기자가 도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화천 시골로 들어가 정해진 비용만을 소비하며 살아가게 된 과정이 자세히 적힌 책이었습니다. 책은 마치 내가 꿈꾸던 삶을 먼저 살아 내고 있는 선배의 따뜻한 조언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하여 요즘은 불안 대신 그간 ‘돈’ 때문에 내 귀한 인생을 옥죄고 허비한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철밥통 16년 직장생활은 무의미한 반복을 싫어하고 유유자적 주변을 돌아보길 좋아하는 제 개인적 취향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고 절감하는 중입니다.

     

책 속에서 작가는 한 달에 사용해야 할 돈의 범위를 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 고민이 결코 구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하루의 95%가 행복하고 나머지 5% 정도가 불편해졌을 뿐입니다. 저 또한 직장을 나가지 않으며 하는 행위가 몇 가지들로 정리됩니다. 책 읽기, 글쓰기, 라디오·음악 듣기, 산책하기, 장보기, 밥하기, 낮잠 자기, 고양이 털 빗기기, 가계부 쓰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비로소 흔해빠진 부자가 아니라 시간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에 시간 부자가 되면 등이 따수운 차원을 넘어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넘어졌다면 잠시 쉬어가기를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의 건널목 신호등이 깜빡입니다. 그 찰나의 순간 뛰어서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를 빠르게 고민합니다. 앞서 뛰어 건너고 있는 사람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저는 유유자적 걷기를 택합니다.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바람도 느끼고 꽃구경도 합니다. 이 건널목을 계기로 어쩌면 저는 목표지점까지 늦게 도착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을 것입니다. 애초에 목표지점이 모두 같은 건 아니니 상관없습니다.


넘어졌다면 잠시 쉬어가야 합니다. 잘 쉬어가야 합니다. 아니 쉬는 그대로를 자신의 인생으로 꾸려가도 괜찮습니다. 무언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자신을 너무 괴롭힌다면 가진 것들을 놓아 버리는 것 또한 용기일지모릅니다.


독거                                                                                                  

                          - 이원규


남들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

물수제비를 날린다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

낮잠을 자다 지겨우면

선유동 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

미안하지만 남들 바삐 출장 갈 때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정말이지 미안하지만

남들 야근할 때

대나무 평상 모기장 속에서

촛불을 켜 놓고 작설차를 마시고

남들 일중독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일 없어 심심한 시를 쓴다

그래도 굳이 할 일이 있다면

가끔 굶거나 외로워하는 것일 뿐

사실은 하나도 미안하지 않지만

내게 일이 있다면 그것은 노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곧 죄일 때

그저 노는 것은 얼마나 정당한가

스스로 위로하며 치하하며

섬진강 산 그림자 위로

다시 물수제비를 날린다

이미 젖은 돌은 더 이상 젖지 않는다




소비로부터 자유로운 삶에 대한 발견

많은 이들이 ‘돈’으로부터 ‘소비로부터’ 지금보다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무언가 사고 싶다는 욕구가 피어오를 땐 잠시 생각을 멈추고 ‘지금 그 물건이 없다면 당장 사는 데 지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쉽게 '아니'라고 단호하게 응답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기존에 제가 소비하던 비용의 70% 이상이 줄어듭니다. 옷장에 넘치도록 쌓이던 옷들, 집안에 예쁜 쓰레기들이 하나둘 사라지니 덩달아 마음도 가볍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필요한 것은 절대 구매하지 않습니다. 옷장 구석구석 찾아보면 입을만한 옷들이 꽤 보입니다. 웬만하면 외식은 하지 않습니다. 치킨과 피자, 햄버거는 되도록 멀리합니다. 책은 중고서점을 통해 구매하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봅니다. 자주 찾는 콘텐츠가 아니라면 정기구독 서비스는 과감히 해지합니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놓쳤다면 다시 보기 유료 서비스가 아닌 재방송 시간에 찾아봅니다. 영화도 무료로 제공되는 것들을 찾아봅니다. 운동은 동네 공원 걷기나 유튜브의 영상을 보며 따라 합니다. 천 원, 이천 원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이소에서 물건 하나를 고르는데 30분 이상이 소요됩니다.


아직은 초짜의 향기가 풀풀 납니다. 퇴사 후 생존을 위해 브라우니만 구워먹었다는 김보통 작가에 비하면 배부른 투정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기꺼이 맛난 밥을 사주고, 불필요한 소비는 과감히 포기하는 ‘현명한 소비’가 이제야 손에 잡히는 것 같아 눈과 머리가 맑아집니다. 돈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귀함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매 순간순간이 우리의 삶에 있어 소중합니다. 물론 추구하는 삶에 대한 개인차는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사내정치’, ‘승진’이 직장생활의 최고의 가치라고 외치는 상사의 말을 아무리 곱씹어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었던 부류의 사람입니다. 하여 그간의 노력을 다 뒤로하고 멈춤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소한 ‘소비’라는 것을 신중하게 해야 앞으로 더욱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 되는 공통 진리라고 확신합니다. 


영화 버닝 속  '혜미'


카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은 모두 두 종류의 굶주린 사람이 있대. 리틀헝거는 그냥 배가 고픈 사람,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 난 그레이트 헝거가 될거야. - 영화 '버닝' 혜미의 대사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기

내가 원하는 미래는 다시 돌아가 내 시간을 고용주들에게 저당 잡히는 삶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건강한 소비습관을 완전히 체화하는 과정의 훈련을 꾸준히 할 것입니다. ‘돈’은 내가 꼭 필요한 만큼만 벌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조금이라도 연결 지어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이것이 내 행복을 가장 큰 기둥을 세우는 과정이라고 믿을 작정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고 퇴근하는 당신들을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다양하고 넓은 세계가 발끝 앞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보편적이고 평범한 삶 만이 정답이라 믿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휘저으며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주변의 무거운 짐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내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는 것. 바로 그것부터가 시작입니다.





     

#넘어지다 #상처 #면담 #진상 #은둔형외톨이 #얼짱 고양이 집사 #우울증 # 자칭 전과2범쓰레기


앞으로도 은둔형외톨이가 더 넓은 세상을 향해서 좌충우돌 나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제 이야기가 여러분들의 일상에서 작으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습니다.  부디 앞으로의 우리들의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잘 마무리 지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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