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열세 명뿐인 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태어난 탓이었을까. 나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주어졌다. 그럼에도 주워들은풍월은 제법 있었는지 영어가 나를 멋진 미래로 데려다주는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게다가 TV에서나 보던 외국인과 자유자재로 대화를 나누는 미래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영어에 대한 환상은 첫 영어 수업에서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난 뒤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아직도 선생님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름하여 ‘조. 남. 직’ 쓰엥님.
자로 잰 듯 반듯한 가르마, 핏줄이 드러나 보이는 창백한 얼굴, 뾰족한 덧니.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은 마치 선생님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 선생님의 모습은 영화에서 보았던 드라큘라와 흡사했다. 비단 외모만 싸늘했던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매 수업시간 단어 시험을 보도록 했는데 그 시간은 학생들을 오들오들 공포에 떨게 했다. 시험 결과에 따라 몽둥이의 뜨거운 맛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도 ‘사랑의 매’에 대한 반감이 들끓었다.
‘나를 때리는 한 영어 공부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영어를 잘 배워 보겠다던 다짐은 온데간데없었다.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하시면 시선은 듣는 척하느라 칠판을 응시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온갖 공상의 날개를 펼쳤다. 그것이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님에게 할 수 있는 소심한 반항이자 복수였다.
한데 나와 같은 반동분자만 영어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반에는 영어를 싫어하는 중딩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단어 시험 후에는 항상 ‘매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선생님은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엉덩이 바로 아래 부위를 힘차게 내려쳤다. 매를 맞고 나면 여린 살결들은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아픔을 덜기 위해 매를 맞기 전 교복 치마 밑에 체육복을 돌돌 말아 올려 입기도 하고, 책도 받쳐 보는 꼼수도 부려 보았지만, 효과는 늘 기대보다 미미했다.
여느 날처럼 영어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단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상하리만치 그날만큼은 절대 선생님에게 매를 맞고 싶지가 않다는 열망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잔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다 번뜩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컨닝! 컨닝! 그래 컨닝을 하는 거야!’
매번 반복되는 시험이기에 책상 위에 무엇이 올려져 있어도 선생님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신다는 허점을 노린 작전이었다. 6단계로 구성된 컨닝 방법은 이러했다.
① 자연스럽게 답이 적힌 영어 노트를 책상 위에 펼쳐 놓는다.
② 노트 위 왼쪽에 책을 올린다.
③ 노트 위 오른쪽에 시험지를 놓는다.
④ 엎드린다.
⑤ 왼쪽 책을 살짝살짝 들어 노트에 적힌 영어 단어를 본다.
⑥ 시험지에 옮겨 적는다.
누가 봐도 어설픈 컨닝 방법이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어느 때 보다 진지하게 주어진 일 앞에 집중하고 있었다. 드디어 단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약간 구부린 자세를 하며 동시에 선생님의 움직임을 따라 촉수를 세웠다. 선생님이 멀찍이 떨어져 움직이시는 틈을 타 책을 살짝살짝 들어 그 속에 적힌 단어들을 보았다. ‘쿵쾅쿵쾅’ 가슴은 쉴 새 없이 요동쳤다.
그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컨닝의 시간. 단어를 몇 개쯤 보고 옮겨 적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창백한 얼굴의 드라큘라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선생님은 판사의 판결봉 같은 묵직함이 느껴지는 몽둥이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 순간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좀 전까지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던 뇌가 맥없이 멈춰 버렸다.
"아, 이런 현실 적응 빠른 뇌 같으니라고! 오늘부로 열세 살 인생 제대로 망했네!”
"아, 이런 현실 적응 빠른 뇌 같으니라고! 오늘부로 열세 살 인생 제대로 망했네!”
쭈뼛쭈뼛, 고개를 들어 세상 비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계셨다. 그리고 그 날은 컨닝을 하지 않았던 때 보다 두 배로 뜨거운 몽둥이의 맛을 봐야 했다. 후에 친구들에게 들으니 나는 컨닝을 한답시고 혼자서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선생님께서 몰랐다면 이상했을 정도라고 했다.
몽둥이가 남긴 흔적은 거의 2주간 내 몸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 친구들에게 컨닝을 하면 나처럼 된다는 본보기가 되어 주었던 것 같다. 이날의 컨닝의 추억 덕분에 이후 그 어떤 시험에서도 컨닝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요행을 바라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지는 요즘, 선생님과 부모님이 항상 방향지시등을 켜 주시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때처럼 내가 잘못을 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거나, 옳지 않은 선택을 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하고 때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 표지 사진은 픽사 베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