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점심시간

급식 시간에 있었던 일

by 여름 풀꽃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 학교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단연 급식 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파지는 시절의 급식 시간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면서 학교에서의 일과 중 가장 긴 시간을 쉴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교사가 되어 맞이한 급식시간은 하루 일과 중 가장 정신없고 바쁜 시간이다. 그래서 일부러 급식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고 아이들 하교 후, 뒤늦게 도시락을 꺼내 먹는 선생님도 있다. 나는 그럴 만한 정성도,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오후 늦게까지 공복으로 버티며 수업을 할 자신이 없어 그냥 급식비를 내고 아이들과 똑같이 식판에 급식을 먹는다.

이 학교로 전보를 오기 전에는 단체 급식실이 있는 학교에서 근무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다 같이 급식실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다시 다 같이 모여 교실로 올라가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단체 급식실이 없다. 급식 차가 오면 교실에서 배식을 하고 급식을 먹는다. 그러면서 점심시간이 하루 중 가장 정신이 없고 힘든 시간이 되었다.


올해부터 구청의 예산 부족으로 3학년 담당의 급식 배식 도우미 어르신들의 지원이 끊겼다. 즉 3학년부터는 아이들이 교사의 도움 아래 스스로 배식을 하는 것이다. 3학년 아이들 중에는 아직 손 근육이나 정교함이 부족해 우유를 마시다가 쏟거나 식판을 놓치는 일이 많다. 그래서인지 고학년쯤 되면 급식당번을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지만, 3~4학년 아이들은 급식당번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배식이 끝나면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도망치듯 앞치마와 모자를 벗어던지고 급식을 받는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다섯 명씩 3일 동안 돌아가면서 급식 당번을 한다.


학년 초에 급식을 나눠주는 방법, 잔반을 정리하는 법, 식판을 놓는 방법, 급식 시간에 줄 서는 순서, 식판을 잡는 방법, 숟가락 놓는 방법 등 아주 기본적이지만 아이들이 잘 지키지 못하는 규칙과 요령을 알려준다. 반 정도의 아이들은 알려준 규칙을 잘 지키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모든 아이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무한 반복을 해서 시범을 보이며 급식 지도를 한다.



오늘도 식판이 쏟아졌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한 아이가 한 손으로 식판을 들고 잔반을 내러 걸어간 것이었다. 식판은 여지없이 '와장창'소리를 내며 남은 음식물과 함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런 일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2~3일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이 소리가 들리면 사건 현장으로 자동 출동이다. 오늘도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쏟은 음식물을 걸레와 물티슈로 여기저기를 기계처럼 닦아냈다. 차라리 아무도 없는 바닥으로 식판이 쏟아졌으면 그나마 간단한데 이번에는 다른 아이의 자리에 잔반이 몽땅 쏟아졌다.

"선생님, ○○이 가방으로 국물이 들어갔어요!"

"공책이랑 다 젖었어요!"

"우웩, 국물 냄새나요."


피해를 입은 아이의 책상과 가방, 학용품을 닦아주는데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방을 뒤집으니 국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났다. 가방이 더러워진 아이는 얼마나 속상할까 싶었다. 식판을 쏟은 아이는 당황을 했는지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보고만 있었다.


"○○아, 우선 □□에게 사과부터 해야지. 실수였어도 많이 속상하겠는걸?"

"미안해."

"..."


○○이는 □□에게 사과를 했다. □□는 대답 없이 자기 자리를 망연자실하게 보고만 있었다. 나도 이해가 간다. 아마 나였어도 속상한 마음에 웃는 얼굴로 사과를 받아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있다. □□는 울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았다.




그 사이 우리 반 △△이가 밥을 먹다가 말고 자신의 물티슈를 통째로 손에 쥔 채 나타났다. 그러더니 쭈그려 앉아 말없이 물티슈를 뽑아서 흘린 음식물을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이는 평소에 친구들에게 냉정하게 대해서 오해가 자주 생겨 그때마다 문제를 해결해줘야 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랬던 아이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달려와 친구의 어질러진 자리를 닦아주다니! △△이의 마음이 참 예뻤다. 간식 같은 보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도움을 주기 위해 멀리서 달려온 아이의 행동이 더욱 기특했다. △△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우당탕탕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을 마친 뒤 교실로 돌아왔다. 음식이 쏟아졌던 그곳의 책상과 바닥을 다시 닦는데 문득 지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늘 다시 보게 된 우리 반 △△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무언가를 베풀었던 일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 시절 내가 조금 손해를 봐도 친구를 위해 기다려줄 줄 알고, 내가 가진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눌 줄 아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가며 무한 경쟁 속에서 입시와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남과 비교해 가며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기만 했던 것 같다.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든 건지,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가면서 이기적으로 변해가니까 사회도 점점 각박해지는 건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러면서 내가 서서히 시간과 물질을 타인과 나누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 되어 간 것은 씁쓸하지만 명백한 사실 이었다.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순수함과 배려심 가득한 내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던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