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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4. 2024

2023년에 스며든 파도소리

나에겐 오도리 해수욕장의 파도소리가 기억나는 한 해였다.

2023. 12. 31. 일요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2023년은 어떠셨나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행복했나요? 아니면 지치고 슬프고 어둠 속에 방향을 잃은 채 그저 방황하고 계시나요?


2023년의 시작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방송에는 연말대상 같은 연말 프로그램들을 송출하고 있네요.

정말 치열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2023년 1월만 하더라도 아무런 기대감조차 갖지 않은 채 그저 그냥저냥 한 삶을 또다시 1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제 풀에 지쳐 무덤덤했던 것 같아요.


전 그동안 인생을 참 재미없게 보내고 있었던 것 같았어요. 나이는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데 해낸 것은 없는 것 같고, 건강도 점점 안 좋아지면서 하나하나 모든 게 게을러지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요. 연애요? 연애라는 것은 준비된 사람들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잠식해서 '저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라며 그저 회피하기 바빴죠.

고작 제가 할 수 있는 건 바쁜 주중을 보내고 주말에 일어나 차를 타고 오도리 해수욕장에 혼자 차를 세워놓고 바다만 쳐다보다가 오는 일이 다였죠.


다른 것은 흥미도 없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고 지치는 와중에도 혼자 집을 떠나 해수욕장에 차 대놓고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것만큼은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았어요. 뭐랄까, 그냥 제 지친 심신 속의 불협화음을 바다의 단출한 파도소리로 메꾸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2월~3월이 지났어요. 점점 더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전 제 자신에게 여유를 줄수도, 주어서도 안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서 남들 다 쓰는 연차도 안 쓰기 시작했어요. 다들 저에게 '고생한다, 그래도 이번엔 연차 좀 쓰고 어디 다녀오기라도 해'라고 하면 전 그 위로조차 과분하다고 생각했죠. 겉으로는 어디 갈 곳도 없고, 뭐 하기도 재미가 없네요라는 대답으로 사람들의 질문을 무마시켰지만,

사실은 모든 게 지칠 대로 지쳐서 그냥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차를 끌고 날씨가 좋든 말든(그래도 날씨가 맑은 날을 더 선호하긴 하였지만) 오도리 해수욕장에 들러 캠핑의자를 펴놓고 바로 뒤에 있는 카페를 들러 아메리카노 하나 시켜서, 블루투스 스피커와 함께 그냥 시간을 보낸 거 같아요.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차를 끌고 드라이브 나오는 걸 좋아하는 건가, 바다가 좋은 건가, 커피 한 잔이 좋은 건가 아니면 잔잔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게 좋은 건가'


한 번은 바닷가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더랬죠. 왜냐면 이상하리만큼 누구와 같이 이 공간을 오고 싶진 않았거든요. 제가 원해서 오긴 온 것 같은데 정확한 동기부여는 도저히 알 수가 없더라고요.

제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서도 이런 감정이 드신 적이 있었나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바닷가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가만히 침잠하면서 불현듯 가라앉고 있던 저는 어느샌가 12월 마지막날이 가까워져 오는 지금까지도 그 침잠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3월부터 12월 초까지 상당히 많은 일이 있었어요. 제 인생을 송두리 채 흔들 만큼 강렬하고, 짜릿했고, 행복했고, 복잡한 일들이었죠(추후에 정리해서 글을 한번 써보려고요)


그리고 지금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렇게 담담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갔던 바다는 못 간 지가 벌써 수개월이 지났네요. 그동안 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취향들이 바뀌었어요. 항상 듣던 음악 장르도 당장 춤을 추지 않으면 버틸 수 없던 신나고 리드미컬한 음악 위주에서 인디가수들의 인생에 대한 솔직한 감정들로 가득 찬 장르에 마음이 냅다 꽂혔다던가, 살면서 책은 시험공부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았는데 이젠 북카페에 혼자 가서 책도 읽으면서 작가님들의 삶을 마음속으로 느낄 수도 있는 경험을 한 거라던가, 사람들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철학적 또는 윤리적인 쟁점에 대해서 혼자서 조용히 사색에 잠겨 고민해 보던 일이라던가..


그러다가 오늘은 '서른의 연애'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발견해서 곧바로 대출해서 읽게 되었어요. 생각지도 않았는데 '좋은 비' 작가님도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활동하시는 작가님이시더라고요(물론 2019년이 마지막 게시글이라 슬프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식간에 읽으면서 작가님의 사소하지만 담담했고, 독일까지 날아가 소개팅을 하던 뜨겁기 그지없던 연애사를 읽으면서 나도 그렇게 뜨겁게 연애했었지라는 뭔가 모를 울컥함도, 작가님의 주위분들이 겪은 연애사에서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상큼함과 귀여움느낄 수 있었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서른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연애에 대한, 아니 단순히 연애라는 개념보다 '나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함께 하기에 행복을 느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하게 되는 계기였다랄까요. 참 읽기 좋고 마음이 어딘가 적적해지는 좋은 책이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책을 더 읽어보려고요. 저한테서 소외되어 있던 감성적인 세포를 좀 깨워주려고요(혹은 이미 너무 과민해져 버린 감정의 움찔거림을 진정시켜야 할 수도 있기에) 

그래서 날이 풀리면 책을 대출해서 오도리해수욕장에 갈까 싶기도 해요. 햇빛이 찬란하게 내리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그 곁엔 아메리카노 한잔과 잔잔한 바닷소리가 배경음악이 되어 제가 정말 원하던 것을 지금 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을 수 있게 말이죠.


"평화로움,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로구나"

물론 지금은 쉽사리 평화롭다고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요..


자, 2023년은 이렇게 가네요. 참.. 행복했었고 다사다난했었고 외롭고 슬프기도 했던 한 해였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행복했나요? 아니면 지치고 슬프고 어둠 속에 방향을 잃은 채 그저 방황하고 계시나요?'


글의 서두에 썼던 제 질문에 대하여.


행복하신 분들에게는 2024년에도 행복이 가득하기를,

지치고 슬픈 분들에게는 2024년에는 희망이 가득하기를,


저는 2024년에는 읽고 싶은 책 더 읽고, 작가님들의 삶에 대한 고찰에 대하여 공부하고 음미한 뒤에 감정을 풍부하게 또는 한없이 침잠시켜 진정시킬 때마다.. 브런치에 글을 써보려고요. 그리고 훗날 다시 글을 보았을 때 내가 어떠한 감정으로 그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는지 회상하고 싶네요. 나에게도, 또한 당신에게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올게요.

감정의 움찔거림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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