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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0. 2024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줏대 없는 사람은 옳지 않은가?

어릴 적에는 본인 위주로 세상이 흘러간다는 믿음으로 인해 내가 습득한 지식이나 경험이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고집을 꺾기란 쉽지 않다. 또한 그들에게 잘못된 지식이라든지 경험이라든지 올바른 것을 제대로 알려주려고 해도 나라 잃은 백성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생떼를 부리면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라면서 숱한 시련을 겪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었던 지식과 경험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한낱 객기에 지나지 않았으며,  새로운 시야와 방식을 스스로 체득해야만이 내가 빠져있던 우물을 기어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일 때 내가 굳건히 믿었던 세상은 대학생이 되어서 틀렸던 것이라고 깨달았고, 대학생일 때 굳건히 믿었던 나 자신은 사회생활을 하며 또다시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나를 둘러싼 아니, 나를 온전히 구성하고 있던 지식과 경험은 나날이 산산조각 나서 또 다른 나를 구성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열려있는 자세로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간이 줏대 없이 살면 안 된다. 본인의 기조가 있어야 하며 철새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면 욕만 먹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다.

 줏대 없이 산다는 것은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인가? 


21세기, 더군다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존중되어야 하며 소수의 의견이라도 함께 보듬어가고 다수의 의견에 반영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시스템 및 인프라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줏대 없이 산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항상 열려있는 오픈 마인드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말이다.


물론 내가 말한 명제는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잘못된 정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틀렸다가 아닌,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의견은 틀렸기에 절대로 들으면 안 되고 동조해서도 안된다!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은 오히려 본인을 우물 속을 넘어서 지구 내핵까지 끌어당기는 그야말로 객기 중의 객기라고 말이다. 


공직생활에 들어오고 나서 여러 의견을 가진 조직구성원이나 본인의 불만이나 의견을 개진하는 민원인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그들은 스스로의 의견을 자신들만의 근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피력하며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업무를 진행하며 내가 생각한 경로를 이탈하여 나뭇가지가 얽히고설키듯 온갖 방향으로 퍼져나가 마감기한을 못 맞추는 경우도 일상다반사였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토대로 하나의 업무를 하는 데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고 이는 틀렸다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란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의견을 듣고 있다 보면 얼토당토않은 근거를 제시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어쩜 그 의견도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 필요하긴 했었구나라는 것도 깨닫곤 했다. 


그렇기에 앞서 말한 것처럼 본인의 우물을 깨기 위해선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태도, 아니 다르다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설득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태도로 그 의견을 반영하고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건설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소설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영화든 획일화된 생활을 살아가야만 하는 지구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선 모든 사람들은 체형도 똑같고, 표정도 똑같고, 감정도 없으며 하는 행동도 정해져 있는 사회였다. 그만큼 재미없고 따분할뿐더러 개개인의 개성을 죽여버린 모습이 있을까? 


가끔 뉴스에서도 정치인들이 "너는 틀리고 나는 무조건 옳다. 그렇기에 너의 의견은 무시되어야 마땅하고 사람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 한다"는 논리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저만큼 위험한 발상이 어디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는 논리가 중요하다고 목에 힘주어 말하던 사람들이 몇 년 후엔 반대편에 서서 이번엔 논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광경을 깡그리 욕하던 사람들을 마주하며 더욱이 내가 생각하던 줏대 없는 사람이 저기에 있다고 여기곤 한다. 줏대 없다는 것은 사실 여러 논리에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오픈 마인드를 가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자면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겠다만 요즘 같은 세상에선 사람들마다 필요한 성향이 아닐까 싶다. 다 같이 사는 동네, 도시, 국가 나아가 지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죽일 듯 달려드는 이 지옥도에서, 줏대 없는 사람이 되어서 서로의 의견을 중요하게 경청해 주고 이를 더 좋은 결과로 도출해내는 자세가 지금 시점엔 더 필요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는 "그때의 의견도, 지금의 의견도 서로서로 다르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름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싶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그 논리 자체를 어렵게 여기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천천히 살펴보고 내가 설득하거나 설득당할 수 있는 건설적인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이 더 안락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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