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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Jul 02. 2022

미뤄왔던 여행지, 군산

나에게 있어 열린 대나무 숲같이

예전부터 궁금해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군산. 

일제강점기에 아픈 역사를 지닌 지역으로 일본식 가옥들이 많고 좋아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도 있는 곳이다. 전부터 미뤄왔던 여행지를 이제야 간다. 모든지 생각나는 김에 할걸, 후회할걸 알면서도 나중으로 미루는 심리는 뭘까. 그래서 나는 주변에 추진력, 결단력이 강한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럽다.

군산을 즉흥적으로 당일치기로 갔다. 빵순이는 먼저 군산 빵집에 대해 검색해본다. 제일 유명한 이성당은 아쉽게도 내가 가고자 하는 날이 정기휴무여서 문을 닫았다. 이성당은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에도 있다. 그래서 군산의 3대빵집중 하나인 '영국빵집'에 방문했는데, 동네에 있을법한 이것저것 파는 클래식한 빵집이었다.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빵집의 시그니처 빵(단팥빵, 야채빵 등)을 제치고 내가 좋아하는 콘브레드 재질의 옥수수 스콘과 옥수수빵을 골랐다. 둘 다 맛있지만 옥수수빵은 옥수수 스콘보다 밀도가 더 높고 건포도와 밤도 들어있다. 이런 밀도 높은 목 막힘의 빵 너무 좋다.

다음 행선지는 동국사 절로 향했다. 전에 부산여행 갔을 때 '아홉산 숲'이라는 대나무 숲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을 방문하기 전 대나무 숲이나 숲길은 그저 여행에서 많이 먹었을 때 산책하는 정도로만 갔다. 아홉산 숲도 여느 때처럼 걷기 위해 갔는데 정말 좋았다. 바람, 풍경, 냄새 모든 게 다 좋았던 기억이 있어 여행지를 검색할 때마다 그곳에 대나무 숲이 있는지 검색하는 습관 아닌 습관이 생겼다. 군산 대나무 숲을 검색했더니 동국사라는 절 뒤편으로 아주 작은 대나무 숲길이 있다고 한다.

도착하기 전 사진상으론 규모가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작은 곳이었다. 절 뒤편의 화장실 가는 입구와 비슷하고 숲길을 올라가는 계단도 오래되어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삐걱거렸다. 나 때문에 계단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대나무 숲이 얼마나 작냐면, 계단을 올라가고 나서 나의 작은 몸이 한 바퀴 돌면 끝나는 정도였다. 내가 여길 오고 싶어서 3시간 달려온 게 맞을까 라는 허탈한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래도 대나무 숲을 갈 때면 시원한 대나무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아진다. 대나무와 바람 그리고 하늘은 마치 삼위일체 같다. 역시 자연은 사람을 순하고 올바르게 만드는 것 같다. 

난 대학생 때부터 자연풍경 찍는 것을 좋아했다. 한 번은 지나가다 꽃이 예뻐 보여 사진을 찍었더니 같이 있던 친구가 안 어울리게 왜 꽃을 찍냐고 했다. 아마 뉘앙스는 왜 착한 척 여성스러운 척 꽃 사진을 찍냐는 말이었다. 나는 원래 본 투 비 차분하고 나름 착한 면도 있고 생각도 많은 사색인인데. 초등학생? 중학생? 때부터 말도 못 하고 발음이 어눌해서 입을 다물고 조용하게 있는 습관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친해지면 장난도 치는데 그러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래서 겉으로 차가워 보이고 까칠해 보이고 이기적으로 보여도 본 투 비는 그러지 않기에...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연풍경을 좋아했던 것!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고 싶었던 신흥동 일본식 가옥도 휴무였다.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하는 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근처 거리를 기웃기웃 거리며 걸어갔다. 일본의 한 지방이 생각나는 깔끔한 분위기의 거리였다. 일본은 원전 터지기 전까지 가족여행으로 자주 가고 일본 중학교도 다닐뻔했던 적도 있어 내적 친밀감이 있는 나라다. (당시 일본문화를 좋아하고 가수 '우타다 히카루'를 좋아했다) 군산이 일본 느낌이 풍기는 지역이라 해서 마냥 가고 싶었던 것도 있다.

거리에는 작은 소품 가게, 디저트 가게들이 곳곳 있었다. 소품 가게에는 군산의 명물 같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관련 굿즈도 판매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사진관이 나왔다. 역시나 이곳도 휴무라 문을 닫아 내부를 볼 수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심은하처럼 실내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바깥에 걸려있는 심은하 사진만 찍었다. 어쩜 이리 고상하고 청초하게 예쁠까. 아쉬움이 남는 배우중 한 명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그 시절 90년대 감성이 듬뿍 담긴 영화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은은하면서 절제미가 있다. 다음은 없을 것 같아 사진으로만 기록하는, 나에게 있어 이날은 6월의 크리스마스.

무모하게 군산 가고 싶다란 생각에 3시간 걸려 도착한 곳을 2시간도 안되어 다시 서울로 갔다.

어설픈 일기인 브런치 글을 보는 내 지인들 또는 눈팅만 하는 나의 언저리 지인들 혹은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관종이라 생각할지 자아가 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한 친구는 내게 그랬다. 이런 일기 같은 글 남들이 봐도 되냐고, 아무렇지 않냐고 그랬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은근히 남이 봐주길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한편으론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과 말들을 적기도 하니까 나에게 있어 열린 대나무 숲일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대나무 숲에서 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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