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마음에 마치 블랙홀이 생긴 느낌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여서 공허만이 남아있는 요즘, 무엇이 좋은지도 싫은지도 몰라서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내가 약간 한심해 보이는 중. 늘 좋고 싫음이 분명하던 뾰족뾰족한 아이였는데 어느새 자라서 둥글둥글 마모 되어가는 과정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이 조금 심각하게 와닿았던 것은 식사를 할 때 였다. 미각에 민감한 편인데, 보통은 바깥에서 식사를 하면 종종 조미료를 감별하고는 했다. 하지만 요즘은 무엇을 먹어도 내 입 안에 스쳐지나가는 음식들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살기 위해 먹고, 스스로가 힘들어서 맛을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요즘은 약을 먹고 있다. 우울증 약은 아니고 신경성 위염으로 인한 내과 약을 복용 중이다. 감정에 무뎌진것과는 별개로 이놈의 예민한 성격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엔 위염까지 옮겨갔다. 하도 허약해빠져서 약 먹는 것 쯤이야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역시나 점성 있는 물약은 내게 쥐약이다. 이번에 처방 받은 약은 다행히도 쬐끔 먹을만 했는데, 약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향이 났다. 성분표를 읽어보니 역시나 바닐라향이 첨가 되어있었다. 끔찍한 맛을 잡기 위해 알량하게 바닐라 향을 첨가하는 행위 같은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딸기 시럽약의 그 인공적인 향을 엉엉 울 정도로 싫어해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약을 멋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보니 나는 본의 아니게 물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고, (독감이라던지…) 울며 겨자먹기로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2010년대를 지나 2020년에 진입했는데,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아다니지 못할 망정 약이라도 먹을만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소심하게 생각해본다.
여튼 약의 도움을 빌려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다는 사실에 약간은 자괴감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다스리지 못한 나약한 내 자신의 멘탈 때문에 몸이 아픈건가 생각하면 또 다시 스트레스를 받고… 악순환의 고리가 나를 덮쳐왔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던데, 나는 내 스스로 병을 키우고 있는게 아닐까. 내 안에 생긴 블랙홀이 이놈의 스트레스나 좀 가져가줬으면 좋겠다.
텅 빈 내 안을 다시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틈만 날때마다 이런 고민 하는 것이 요즘 나의 새로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이전처럼 제대로 된 목표도 없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잿더미 같은 열정 쪼가리로는 도대체가 불이 붙지 않는다. 올 한해의 목표는 내 인생의 목표 찾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이 들긴 한데… 이 일기의 끝이 보일때 즈음에는 내가 답을 찾은 이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