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이직준비, 책에서 처음 받아본 위로
오늘 이 책을 읽게 된 일은 정말 운명 같았다. 합격을 90% 이상 예상했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믿기지 않아서 정중하게 면접 피드백 요청을 드렸다. 그런데 면접관으로 참석하셨던 부장님께서 어떤 이유로 합격이 불발되었는지와 정말 따뜻한 내용들을 담아 피드백 문자를 주셨다. 그 내용을 읽고 살짝 울컥했는데, 문자를 읽고 있던 타이밍에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멜론을 좋아하니 먹기 편하게 깎아서 자취방으로 보내준다고 말이다. 안 그래도 문자를 보며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는데, 날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엄마 때문에 이직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좀 울었다. 아닌 척했지만 솔직히 반복되는 탈락에 너무 힘들고 지쳐있었다.
눈물을 그치고 문득 책상을 보았는데 그 위에 이 카피캣 식당 책이 올려져 있는 거다. 사실 이 책 말고도 2권 더 빌려온 책이 있었고, 나름 먼저 읽으려고 했던 책이 있었는데 정말 무슨 일인지 모르게 이 책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고, 그 자리에서 완독했다.
누군가의 인생을 훔쳐 카피캣이 될 수 있는 카피캣 식당.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보거나 SNS를 볼 때 카피캣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특히 요즘같이 이직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광고로 돈을 버는 인플루언서나 유튜버, 혹은 네임드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중견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인생이 있다는 것과,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불행을 안고 살아간다는 말.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마 내가 부러워하는 저 사람들도 저마다의 힘듦, 아픔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그들의 카피캣이 되는 대신 그 아픔과 불행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면? 아마 내가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맹목적으로 부러워하고, 그들과 몸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섣부른 생각이다. 이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알면서도 부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다양한 카피캣들의 삶, 타인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불행을 보고 나니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그래 저 사람들도 불행하잖아.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라는 내가 ’정상‘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그런 마음이 들었기도 했으니까. 다만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불행을 갖고 있으니 이 순간 ‘내가 제일 불행하다, 난 이제 끝난거다’라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경우, 100번이 넘는 이력서 접수와 30번이 넘는 면접을 보고 탈락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내가 뭘 해도 안 되는 시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느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약 나의 주변 사람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 그렇게 살아’라고 나에게 위로를 던졌다면 ‘어쩌라고. 그게 위로야?‘라는 말과 함께 그 사람을 영영 차단하고 엄청 분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서술이나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진 않았음에도 난 그런 감정을 느꼈고,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책이 ‘위로’가 된다는 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기승전결 확실하고, 엄청난 반전이 있고,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류의 책들은 사실 알맹이 없이 그저 예쁘게 문장을 쓰는 포장만 예쁜 책이라고 참 오만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들이 켜켜이 쌓여있다가 이 책을 읽었을 때 갑자기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들이 갑자기 운명적으로 느껴지면서 이 책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지금 나에게 누군가의 카피챗이 되라고 하면 당장 바꾸고 싶은 인물이 있을까? 워렌 버핏? 만수르? 지나가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 아니, 나는 지금은 누구와 인생을 통째로 바꾸고 싶지 않다. 난 나로서 좀 더 도전해보고 싶다. 그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오늘 나에게 문자를 보내주셨던 부장님과 엄마, 그리고 카피캣 식당 책이 주었다. 아직 다음 주에 3번의 면접 기회가 더 남았다. 나에게 맞는 회사가 좀 늦게 찾아오는 중이라고 믿는다.
나는 100개, 아니 수십억 개의 인생 중 하나를 살고 있으며, 바깥에는 수십억 개의 인생들이 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