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숙제인 사람들이 있다. 커피는 무슨, 전깃불을 켜는 것도 사치다.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가져갔다고 잘리고, 안전 정비가 되지 않아 다쳤는데도 일을 하는 중 술을 마셨다고 잘린다. 더 위험하고 더 위태로운 일자리로 밀려난다.
"고학력자가 토막살인한 시체를 냉동.."
그런데 이들을 밀어내는 사회는 더 악랄하다. 끊임없이 폭탄을 터뜨리고, 전쟁을 일으키고, 좀비들이 자초한 일이라며 좀비의 머리에 총을 쏜다. 좀비가 이기는 영화의 결말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지만, 되려 여자는 영화가 웃겼다고 코멘트한다.
"마리우폴에서 공습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민 1200명은 극장으로 대피했습니다."
머무를 곳 없는 그들의 유일한 구원은 극장에 있었다. 우연히 만난 그들은 계획도 없이 커피를 마시고 갑작스레 좀비 영화를 본다. 그러곤 생업에 종사하다가 극장에서 서로를 기다리고, 재회한다. (전쟁 같은 이 현실 속 영화라는 피난처로 향하고, 그곳에서 사랑을 만난다는 설정이 돋보인다.)
"술 완전히 끊었어요. 금주 모임에서 상도 받았어요."
영화 전체적으로 색채 대비가 도드라진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뿐이다. 검정의 사내는 붉은 색의 따스함을 푸른 색으로 덮은 채 살아가는 여자의 집으로 들어선다. 두 사람이 앉은 식탁의 대칭구도 속에서, 검정의 사내가 외투를 벗자 붉은 커튼 앞에 앉은 노란 셔츠의 사내가 되었고, 푸른 코트를 벗은 여자는 노란 벽 앞에 앉은 붉은 스웨터의 여자가 되었다. 서로의 마음 속에 들어앉게 되었다.
그러나 아빠와 오빠가 술로 죽고, 엄마가 그 슬픔으로 죽은 여자는 술고래인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게 헤어진다. 그 사이 여자는 강아지 여섯 마리와 처자식이 있는 남자로부터 떠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온다. 여자에겐 남자의 빈자리가 크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술을 끊는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곧장 만나러 간다. 영화 내내 표정이 없던 여자는 전화를 받고서 처음으로 미소를 보인다.
"나에게 연락하지 않던데요."
"당연하죠. 기차에 치였거든요."
그렇지만 매일이 위태로운 이들에게 희망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가 기차에 치여 혼수상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자를 찾아간다. 간호사가 남자에게 뭐라도 이야기를 해주면 좋다고 해서, 핀란드가 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을 만났다고 해준다. 깨어난 남자는 꿈에서 여자와 혼인신고를 했단다. 그 정도로 비현실적인 행복이다. 이제 미소지을 줄 아는 여자는 덜 깼다고 받아친다.
간호사는 남자에게 전 남편 옷을 선물로 건넨다. 남자는 푸른 셔츠 위에 붉은 색 외투를 입었다. 검정의 사내는 이제 강인한 마음을 품고 따스함을 드러낼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곤 붉은 스웨터 위에 푸른 코트를 걸친 여자와 나란히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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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잔함과 슬픔이 담담함으로써 강조된다. 매일 녹초가 되어 같은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여자도, 술에 절어서 고통을 잊어보려는 남자도, 힘들다는 말 한 마디 해본 적 없다. "빌어먹을 전쟁!" 당장 살아내는 것이 힘겨운데 전쟁이 뭐 대수라고. 계속 바뀌는 일터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에 매일이 불안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같다. 그런 그들에게 서로는 서로를 찾아온 유일한 변화다.
마침내 병상에서 깨어난 남자에게 건네는 여자의 짧지만 강렬한 윙크는 그 어떤 달콤한 말 한 마디보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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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틀에 박제된 인물들을 보여주는 것이 마치 연극같고, 명화나 사진같다. 대칭적인 구도, 모서리를 맞춘 액자와 창문, 결코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인물들. 인물이 움직이지 않아서 거리감이 느껴지고, 멀리서 보니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전쟁과 같은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아름답다는 감상을 갖게 된다. 감독도 이를 의도했는지, 공장과 일터를 높이서 조망하며 화창한 날씨와 단색의 대비로 아름다운 장면들을 사이사이 끼워넣었다.
J컷의 활용이 인상적이다. 음악이 먼저 흘러나와 인물들의 감정과 이어질 상황을 암시해준다. 인물들은 말하지 않고, 음향만이 말을 한다. 잔소리를 들은 뒤 연거푸 술을 들이키지만 여전히 무표정하고 말없는 남자가 있는 바에서는 쌀쌀맞은 여자를 원망하는 노래가 연주된다. 술을 끊고 여자에게 향하는 남자가 건물을 나서자 기차가 급정거하는 소리, 여자 비명소리가 들릴 뿐이다.
<라라랜드>와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고 느낀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끊임없이 노래하고 말하며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낭만과 꿈을 찾아 헤어지는 반면, 이 두 사람은 말도 없고 표정도 없이 힘겨운 삶에 허덕이다가 서로를 만나 희망을 얻는다. 또 두 영화 모두 연극적인데, 라라랜드는 매우 역동적인 반면 이 영화는 굉장히 정적이고 잔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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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깨어나자 여자는 강아지를 데리고 찾아 간다. 이제 남자는 여자의 옆에 붙어 있을 것이다. 강아지처럼. 강아지의 이름은 채플린이다. 아프고 힘든 생존의 여정에서도 웃음과 사랑을 찾아나서는 두 사람은 서로의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