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감정들은 마음에 품고 있으면 나만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든다. 어느 곳으로 가기 전까지 주저도 하고, 고민도 하다가 결국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른 뒤 어떤 마음도 남아있지 않는 나를 보며, 결국 나 혼자만 손해를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10년 간 하면서, 어떤 이를 증오할 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진짜 죽었으면 바랐던 적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던 반면 이곳에 소속되어 있던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도 했고 좋아하기도 했다. 가끔 회의감이 물밀듯이 들어와 좋았던 경험을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좋았던 기억의 잔상만이 머릿속에 남았을 때, 나는 늘 그 생각을 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되새겼다. 그러다 보면 나빴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다시 더 뚜렷해져서 나빴던 어떤 기억들은 굳이 굳이 일기장에서 찾아내 되새김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되게 힘들었으니까 잊지 말았으면, 나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잘 웃어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어떤 선배는 내 블로그를 보다가 사랑받고 관심받은 흔적들이 역겨웠는지 내가 없는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는 걔 볼 때마다 뺨을 후려치고 싶어."라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근데 오늘 그 사람을 마주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서 내가 그런 흔적을 남김으로 인해서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내 뺨을 쳐올리고 싶을 정도로 미운 감정이 차고 넘쳤는지, 지금은 그 감정들이 옅어졌는지 여전한지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다. 근데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에 마지막으로 적고 이제 털어내려고 카페로 나와 글을 적는다. 또 어떤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집착을 했고 내 숙소의 불이 몇 시까지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여러 번 죽고 싶게 만들었지만 오늘 다시 보니 그냥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 사람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과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공존하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나쁜 마음이 들게 한 네 잘못이 더 크다는 합리화도 하면서, 그러다가 내가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에는 진짜 마지막으로 왜 그러셨어요? 물어보고 싶었는데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어쨌든 그 사람과의 모든 추억이 그냥 다 죽어버려서 그때의 경험들을 꺼내서 마음을 흔들어보고, 원망하려는 마음을 가져봤으나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내 마음 자체가 이미 닳아버렸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려서 어떠한 소모도 허락되지 않는 순간들이 왔다. 또 몇 년 전 나였으면 매일 어떤 쪽지를 쓰면서 언젠가 이것들이 발견되면 너희들은 벌 받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 잠을 청했었는데 지금은 그 쪽지들을 봐도, 쪽지에 가득 담았던 원망이랄지 증오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옅어졌음을 느꼈다. 사실 옅어졌다는 것은 내 소원일 뿐, 어떤 상처들은 마음 깊게 남아서 자꾸 움추러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움추러들면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굳이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적어놓은 글들을 읽으며 자꾸 살아야 하는 당위와 잃으면 안 되는 마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예전에 어떤 정신건강 관련 수업을 들었을 때 일이다. 교관님의 수업은 시험에 들어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자거나 게임을 했는데 나는 그 강의가 되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몇 퍼센트는 우울증이다,라는 말에서 나는 수업에 몰입하기 시작했는데 교관님이 그런 말을 했다. 뭐 별것도 아닌데 자꾸 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약하다기보다도 남들과는 다른, 좀 특이한 일들을 많이 겪어서 감정적으로 약하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다. 감정전이가 빠르게 일어나는 사람들이랄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제 장례식장에 갔다가 예전 상을 치르던 생각이 나서 밥을 먹는데 자꾸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는 그 분위기가 너무 싫고 두렵다. 내내 사람들의 오열소리가 들리고 사람을 붙잡으면서 내 자식 너무 아깝다며, 살려달라고 하던 그 순간들이 자꾸 생각난다. 나는 그때 되게 힘들었다.. 말도 안 되는 지시와 그걸 해내야 하던 순간. 인간으로서 나와 충성해야 하는 나, 그 간극 사이에서 자꾸 울게 되는 상황이 생겼다. 어떤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여전하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사실 그때의 나보다 오늘의 나는 분명히 더 자랐을 텐데 그 문장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혼자 또 고민하며 증명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으면 생각했다가, 내가 굳이 왜 증명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나로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가닿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속도 없고 자존심도 없어 보일 정도로 잘 웃으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어떤 문장 하나에, 어떤 말투 하나에 꽂혀서 오랜 시간을 고민한다. 뱉은 문장을 통째로 떠올렸다가, 아니면 단어 단위로 잘라내어 떠올렸다가, 다시 그 말을 뱉던 사람들의 얼굴과 문장을 함께 떠올리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 생각의 문을 닫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곧 털어낸다. 잘 털어내는 순간들이 반복될수록 내 마음속에 남는 미움과 원망은 옅어진다.
지난날 나는 늘 미움을 곱씹고 내가 싫어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누구의 불행을 바라고 누군가가 불행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그런데 그게 이제 무슨 소용일까 싶다. 올해 같은 곳으로 오게 된 후배도 똑같다. 네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했으니까,라는 마음으로 걔를 대하려고 했는데 따로 불러서 말을 했다. 행동을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대우받는 사람보다는 존중하고 싶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어떤 순간들을 견딜 수 없이 힘들었지만 또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희미해진다. 미움받을 용기로 지냈던 지난날들과, 또 누군가를 미워하며 소모했던 체력과 시간들이 이제야 아깝게 느껴진다. 매일 글을 적고 싶다. 서른몇을 살았어도 매일 새롭게 자라나는 감정들과 그렇지 않은 감정들을 담은 일기를 쓰고, 기타도 치고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로 점철된 일 년을 보내고 싶다.
오늘 일기를 쓰다 보니 그때 생각이 난다. 얼굴도 모르던 사람이 메신저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글을 보고 있다고, 본인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름 오래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도 그렇게 힘든 순간이 있다는 걸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힘들어하면 힘들다고 적는 글을 보면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라서, 어떤 위안을 얻었다고. 좋은 사람도 차고 넘치게 많으면서도 미운 사람도 가끔 있는 이곳에서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솔직하게 모든 것을 뱉고 또 삼킬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