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내 마음에 대하여
목욕탕에 물을 받았다. 손가락을 살짝 넣어 온도를 확인하고, 손가락이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내면 발을 살짝 댄다. 발과 무릎, 허벅지까지 들어갔는데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면 일보 후퇴.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탕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안정적인 기분을 주는, 적당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물은 곧 식어버린다. 다시 수도꼭지에 손을 대고 적당한 온도를 슬슬 맞춰낸다. 내가 살짝 반대로 밀면 나를 감싸는 물들이 차가워지고, 다시 그 반대로 밀면 물은 뜨거워진다. 적당한 온도를 찾는 것은 내 몸에 대한 적당한 자극점을 찾는 것이며, 또 그 온도를 찾아내는 세심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가끔 대중목욕탕에 가면 말 그대로 대중적인 취향에 따라 맞춰진 온도에 적응을 해야 하고, 적응이 어려운 경우는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나갔다가 들어갔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런 경우는 나의 편안함에 집중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덜 뜨겁고 덜 차갑게 이곳을 경험할 수 있을까,가 목적이 된다. 반면 내 집 욕조의 온도 컨트롤은 나에게 달렸다. 스스로 입욕시간까지 조절해가며 나에게 적절한 온도를 찾아낸다. 내가 안정적이고 따뜻하게 기댈 수 있게. 노곤노곤함을 적당히 느낄 수 있게. 탕에 앉아 적당한 온도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생 때 나를 많이 좋아해줬던 친구가 있다. 걔가 고백을 세번 했는데 내가 듣다가 매번 도망을 갔다. 그때 내가 매번 했던 말이 분위기를 보니 이거 촉이 좀 그런데 너 진짜 헛소리하면 죽는다.,였다. 걔가 나중에 말하기를 나는 걔의 트라우마였다고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나처럼 튈까봐 고백을 못 하겠다고 했다. 나는 뻔뻔 그 자체라서 그래도 나 정도 되는 사람이 트라우마로 남으면 그것도 괜찮지 않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뭐 그 친구는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꼭 찾아다 주고 뒤에서 내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 아니라고 편을 들어주다가 그 작은 사회에서 떨어져 나갔다. 너는 거기서 왜 나왔어? 그냥 결이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걔에 대한 미묘한 동정심이 생겼고, 인간관계에서 결을 따지는 걔와 나 사이에 작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는 아주 작은 성취감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들을 전해 듣고 친구로서 무척 고마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걔에게는 애정 내지는 사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 선을 그었다. 나는 아마 그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걔가 나를 적당히 좋아해 주고 스며들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많이 사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가정이다. 아마 온도로 따지면 그 사람이 끓는점에 먼저 닿았을 거고, 나는 살짝 따뜻해지다가 이내 적당하지 못한 온도를 보고는 먼저 식어버렸다. 일방적으로 먼저 끓어버린 마음을 보고 놀란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근데 늘 인간관계 사이에는 적당한 온도가 있어야 한다고 외치던 내가 완벽하게 굴복했던 때가 있다. 내가 진짜 좋아했던 사람이 생겼던 때. 아마 그때가 나에게는 그 관계에 있어서 먼저 끓는점에 닿았을 때였을 거다. 그때는 걔는 왜 나와 같지 않을까 걔는 왜 무던할까, 라며 모든 상황에 의문을 붙였다. 끓어 넘치는 온도를 감당하는 상황도 벅찬데 혼자 끓었다가 식었다가 요란스레 변덕을 부리는 주전자와 지속적인 사랑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때. 그래서 내가 걔 마음을 언젠가 이해하고 내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었던 C에게 나 나쁜 년이었다, 라고 말했고 C는 그간의 내 모습을 보며 맞아 너는 나쁜 년이었어라고 해줬다. 욕을 먹고도 덜 불편했었다. 욕을 듣고도 괜찮았던 이유는 인정을 받으니 내가 했던 행동들이 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그냥 면죄부가 찍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C가 5년 뒤 그 친구에게 걔 스스로 나쁜 년이라고 하더라,라고 전했고 그에게 전화가 왔었다. 너는 나쁜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좋은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몇 년 간 해소되지 않았던 미안함이 옅어졌다. 온도. 아마 어리고 몰랐던 때에 무엇이든 해내겠다며 끓던 마음들과 삶의 팍팍함과 내 어깨에 있는 책임감들을 지고 살짝살짝씩 데워지는 마음들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거다. 아마 각종 실패와 포기로 점철된 마음에는 일정 정도의 경계가 있어 쉽게 끓지 못할 거다. 하지만 마치 라면을 끓일 때 눈을 떼면 물이 철철 넘치는 것처럼 살짝 데워진 물들이 순식간에 끓어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마음의 끓는점에 한계를 두지 않기로 했다. 그게 일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