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기요. 투병일기를 왜 베끼세요?

쉽게 가지 말고 깊고 길게 가길 바라며

by 염미희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수술 잘 끝나셨어요.

그렇게 2024년 4월 6일은 나의 두 번째 생일이 되었다.


우연히 발견된 부신 종양 덕분에 수술을 했다. 왜 '덕분에'냐고? 종양의 크기가 4cm 이상이면 개복을 해야 하는 큰 수술이었으나 나는 감사하게도 3.9.cm 때 발견되어 등쪽으로 작게 길을 내어 수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방문했던 병원에서 주치의는 "모양이 예쁘지가 않네요, 자세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마 개복을 해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남은 회진을 위해 병실을 떠났다. 환자복을 입은 나, 그리고 '모양이 예쁘지 않음. 자세히 봐야 함. 개복수술'의 명사형 단어가 병실을 떠다녔다.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개복수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무방비상태로 들어버렸다. '의사 선생님, 저에게 그런 말을 해주시고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그렇게 내내 병원에서 혼자 울며 지냈다. 왜 혼자였냐고? 부대와 가깝게 배정받은 병원이 본가와 멀었기 때문에 굳이 부모님께 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현대판 효녀의 탄생이라고 하고 싶지만 환자로 지냈던 한동안은 불효녀였기 때문에 한시적 효녀 또는 불효녀로 정정하겠다. 자기 전에 혼자 병명을 검색해 보고, 또 검색해 보고. 병명도 난생처음 듣는데, 같은 질환은 가진 환자들도 많지 않다는 이야기. 살다 살다 의학논문까지 찾아보던 시간들. 그렇게 며칠 간의 고군분투가 전원(병원을 옮김) 결정과 함께 매듭을 지어졌다. 그리고 옮긴 병원에서 결국 수술이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정신과 신체가 멀쩡할 것이라는 믿음과 별개로, 문진에서 나온 신체의 지표는 '너 건강하지 않아'를 가리키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 체력검정이나 신체검사는 언제나 우수하게 통과했던 내가 환자가 되다니. 우울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어쨌든 몸이 안 좋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엉엉 울면서 들은 주치의 선생님의 소견 그리고 첫 진료. 병원을 옮겨 다니며 적은 기록과 수술 전 의사 선생님의 사전고지내용, 수술 부작용에서 사망확률까지. 나는 당시 발가벗은 느낌으로 글을 적었다. 글을 쓴 이유는 하나였다. 국내에 몇 없다는 희귀 질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환자로서 어떤 사명감이 생겼다. 난 이걸 적었어야 했다. 나를 위해, 또 누군가를 위해. 어느 부분까지 쓸지 말지에 대해 스스로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그렸으나 결국에는 상당히 내밀하게 적었다. 나에게 그 일기들은 잠 못 들던 날 내내 했던 고민과 ‘결국 그렇게 되었답니다.’로 귀결되는 용기의 산출물이었다. 건강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용기였다. 나는 건강해야 하는 군인이니까.


그 글을 적은 뒤 비슷한 전조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나의 SNS를 찾아왔다. 병명은 발견하기 어렵고 대개 우연히 발견한다고 하여 ‘부신우연종’. 부신우연종은 수술 중 갑자기 혈압이 튈 수 있어 2주일 이상 혈압약을 먹고 수술을 해야 한다. 미리 알고서 수술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질환. 원인을 알 수 없는 테이블데스 환자들에게 사후에 가끔 발견된다는 부신우연종. 나는 불편한 미사여구가 많은 그 질환을 알리고 싶었다. 전조증상이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으니까. 용기를 내 적은 글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내 글 덕분에 그 질환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찾다 보니 증상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 투병일지는 그 질환을 가진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지식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어떤 환자들은 검색어를 통해 내 SNS를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본인의 가족이 나와 같은 질환으로 확진받았다면서 나에게 수술 전의 상황, 그 과정, 수술 후의 일상을 물었다. 여기서 두 번째 사명감이 생겼다. 아마 두 개였으나 하나가 된 부신에서 비롯된 사명감이 아니었을는지. 문제없이 수술을 잘 받았다는 것에 대한 결과를 전하고 싶었다. 또한 수술 후의 일상이 수술 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수술 후 걷지도 못하던 때부터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던 순간들, 수술 이후 완벽하게 회복하여 15km 달리기까지 성공한 내 모습까지 빼곡하게 적어놓았던 나의 투병일지, 그리고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나의 성장일지.


수술 전 많이 무서워 장난 섞어 글을 적고 또 진지하게도 적었다가, 담백하게 글을 적었다. 너무 호들갑은 떨지 않기로 했다. 나와 같은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나 가족들이 보면 함께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에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안 흔들린 것은 아니다. 병을 알게 된 이후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불안해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 잘 될 것만 생각해." 그렇게 꾸준하고 오래오래 나의 일기를 적었다. 흔들리지 않게. 그래도 좀 재밌게. 긍정적으로 적자.


지속적으로 질환에 대해 관심을 갖던 중 내 일기와 똑같은 글을 발견하게 된다. 내 일기가 그 사람의 SNS에 그대로 적혀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아니겠지. 글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내가 수술을 앞두고 주변사람들에게 걱정 말라며 농담을 써놓은 것부터 내가 갔던 병원의 이름과 내원일, 병원에서 무슨 감정으로 진료를 기다렸는지에 대한 것들까지. 내가 수술 후에 어떤 감정으로 지냈는지에 대한 내용도.나의 투병일기를 그대로 가져다 쓴 상황이었다. 진심을 담았던 그 일기는 그 사람의 마음대로 각색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해주셨다는 농담은 아버지가 한 농담으로 바뀌어있었고 베개가 다 젖을 정도로 울었다는 내용은 그대로 베껴갔다. 일기를 더 찾아봤다. 수술 전 기도를 하고 혹시 모를 유서를 적었다는 내용도, 유서를 스스로 없애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어떤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도 그대로 적혀있었다. 그렇다. 그 사람의 SNS에 내 일기가 마음대로 각색된 채 있었다.


댓글란을 눌러봤다.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질환에 대한 문의를 했다. 역시나 답변은 없다. 마음이 급한 환자들은 댓글을 다시 단다. 역시나 답변이 없다. 그 댓글들에 내 SNS주소를 달아주고 싶었다. '이 글 제 거예요. 제 일긴데 이 사람이 그대로 베낀 거예요!'라고. 다른 포스팅을 찾아보니 가관이었다. AI로 이미지를 생성해서 그림을 첨부하고, 로봇이 말하듯 적어놓은 글이 난무했다. 아. 상업용이구나.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기다림이었을 그 시간들을 그 사람은 상업용 SNS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 썼다. 조회수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소중하고 절실한 시간들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나에게 진심이었던 시간들을 단순한 '돈벌이수단'으로 쓰고 있었다.


나는 며칠간 그 사람 SNS을 보다가, 내 일기가 재생산되지 않도록 권리침해신고를 했다. 병을 찾아보던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기다리는 시간들이 막연하게 흐르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서. 그 일기를 신고한 이후에 같은 상황으로 인해 똑같은 피해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끔 내 투병일지의 어떤 부분들을 검색하곤 한다. 나에게 투병일지는 힘들 때 주변에 앉아 쉴 수 있는 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수술 전후에는 멀리 떠날 순 없으니 가만히 앉아 내가 겪은 감정을 내밀하게 말할 수 있는 존재. 진료 과정 중 힘든 나의 마음을 보듬어주기도 했던 존재. 쌓여가는 일기들은 병에서부터 한 걸음씩 멀어지는, 내가 희망하는 미래와 가까워진다는 방증이 되기도 했다. 가끔 일상에서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지난한 시간을 견뎌내던 투병일기의 그늘에 나를 앉힌다. 여러 걱정으로 들끓던 마음이 이내 시원해진다. 나는 이런 시간도 견뎌낼 수 있었던 사람이었지. 내 글을 보며 나는 다시 힘을 얻었고, 또 얻는다.


진심을 모방하며 사는 삶은 복사본(1)의 인생을 산다. 언제든 삭제가 되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모방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 보면 결국 자신의 삶을 잃는다. 나는 당신이 진심을 담아 삶을 살아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글이나 인생을 모방하지 말고, 그냥 정말 소중한 내 인생 그대로. 아마 당신도 그 정도의 능력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쉽게 가는 것보다 깊고 길게 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스스로 틔우는 창작의 새싹을 응원하고 싶다. 당신이 가진 고유한 씨앗과 그 사랑으로 또 다른 나무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상실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