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상담, 완벽하지 않아도 치유를 위한 골든타임!

학회 밖 다문학적 심리상담사의 치열한 윤리강령 탈출 생존기 그리고 해방기

by 마음훈련소

상담 학계에는 바이블처럼 내려오는 윤리강정이 있다.

가족이나 지인은 절대 상담하지 마세요. 이중 관계는 독이 됩니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관계가 뒤섞여 전문성이 흐려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그 '완벽한 객관성'을 담보할 상담사를 찾아 헤매는 동안, 늪에 빠진 내 사람의 손은 누가 잡아주어야 하는가?


내 아이가 학교에서 여왕벌 놀이의 폐해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나는 네 엄마라서 객관적일 수 없으니 예약 잡고 일주일 뒤에 모르는 선생님을 만나러 가자”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윤리일까? 실제로 그런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어 남을 뿐이다.


내가 심리상담사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던 순간이 기억난다. (근래 SNS에서 있었던 사이버불링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 교수님의 성함을 밝힐 순 없겠지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는 결국 자녀의 상담자 역할을 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자녀였을 때, 나는 상담을 해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절실했기에 그 말은 순식간에 ‘마음이 힘든 엄마’인 나를 '평온하고 잔잔한 호수'로 초대해 주는 기분이었다.




'완벽한 상담'보다 중요한 건 '즉각적인 구원'이 절실한 우리들


심리적 외상은 뇌과학적으로 물리적 외상과 같다고 한다. 피가 철철 흐르는 사고 현장에서 "나는 외과 전문의가 아니니 지혈할 수 없다"라며 구급차만 기다리는 의사는 윤리적인 게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다.

우리가 당장 수술대 위에서 메스를 들 수는 없겠지만, 응급 구조 활동을 하고 환자를 안심시켜 주는 '간호'는 충분히 가능하다. 의사의 처방이 내려진 뒤에도 환자의 곁을 24시간 지키며 살뜰히 보살피는 것이 간호사의 몫인 것처럼, 우리 삶에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만큼이나 지인의 상담이 절실하다.


실제로 내가 삶의 거대한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순간, 나를 건져 올린 건 유명 학회의 1급 자격증 소지자가 아니었다. 그는 상담실의 방음벽 뒤에 앉아 시간을 재는 타인이 아니라, 내 삶의 궤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인이었다. 그는 "윤리상 상담이 어렵다"는 말 대신, 내 머리채를 잡듯(나중에 동료들이 '힘껏 이끌어준 것'으로 미화하자고 했지만, 내겐 그만큼 절박했다) 나를 삶의 밖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늪에서 나올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을 마지막까지 기다려줬다.


이론적으로는 '이중 관계'의 위험이 도사리는 아슬아슬한 동행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지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예약된 상담 시간을 기다리기도 전에 이미 늪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완벽한 수술을 기다리다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환자에게 필요한 건 세련된 처방전이 아니라 당장의 '지혈'이다.


학계의 윤리: "이중 관계는 위험하니 회피하라."
실전의 윤리: "위험 요소를 인지하고 관리하며, 내담자의 골든타임을 사수하라."




갈등조정의 눈으로 본 '지인 상담'의 가치

나는 상담가인 동시에 갈등조정 활동가다.

갈등의 현장에서 중재자는 때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서 있어야 한다.

10명도 안 되는 좁은 교실 안에서 아이들을 살려내는 건, 방음벽 뒤의 중립이 아니라 엉킨 관계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전략적 개입, '회복적 정의'이다.

완벽한 상담실, 완벽한 타인, 완벽한 구조화... 이 '완벽'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방관의 면죄부'가 되고 있지는 않을까?

설령 조금 투박하고 주관이 섞일지라도, 지금 당장 숨이 넘어가는 사람에게 인공호흡을 할 수 있는 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뿐이다. 나는 오늘도 기꺼이 그 '위험한 지인'이 되어 골든타임을 지키기로 했다.




[심리학자의 노트] 교육학자 도널드 쇤(Donald Schön)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술적 합리성'만으로는 삶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전문가는 현장의 늪(Swampy lowland)에 발을 담그고 그 안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는 '성찰적 실천가'여야 한다는 것이죠. 마음훈련소가 학계가 정해준 안락한 고지(High ground)를 두고, 정돈되지 않은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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