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밖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법: 주체적 전문가의 조건

학회 밖 다문학적 심리상담사의 치열한 윤리강령 탈출 생존기 그리고 해방기

by 마음훈련소
분열된 전문가와 '윤리'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상담실 안에서는 인격자 대접을 받지만,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타인을 날카롭게 검열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다. 필자가 온·오프라인에서 마주쳤던 그들이 말하는 '윤리'는 결코 공적인 규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타인을 통제하기 위한 사적 제재일 뿐이다.

실제로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강점을 증명하기도 전에 타인의 '색다름'이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불만을 증폭시키고 전이시킨다. 이건 비판이 아니라, 집단 내에 공포를 심어 주도권을 잡으려는 정서적 폭력이다.


오버스펙 뒤에 숨은 비겁한 자격지심


동종업계 타인을 지적하는 데 혈안이 된 전문가들. 그들의 공격성은 사실 실전 무능력에서 오는 열등감의 발현인지도 모르겠다. 진짜 전문성은 입으로 뱉는 비난이 아니라,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비자의 불만과 돌발적인 피드백까지 책임지고 관리하는 '대비태세'에서 증명된다.

이건 우리나라 특유 주입식 교육제도의 치명적인 허점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배운 전공 서적의 텍스트는 실전 현장에서 즉각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심리학 또한 마찬가지다. 대중은 '지금 당장 내 마음을 어떻게 평온하게 유지할 것인가'를 갈구하지만, 대학은 그저 과거의 인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이론을 구축했는지 암기하라고 강요할 뿐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이론의 성벽 안에 갇혀 오버스펙만 쌓아 올린 이들에게, 성벽 밖의 생생한 삶은 그저 '통제해야 할 무질서'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진짜 전문가는 암기된 지식이 아니라, 나를 먼저 구원해 본 처절한 실전에서 탄생한다.




주체적 전문가: 안과 밖의 일치


진정한 전문가는 상담실 안의 '나'와 상담실 밖의 '나'가 일치하는 '캐릭터화'를 이룬 사람이다. 규정을 외워서 기계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윤리적 기반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 경지에 이르면 타인의 윤리성을 지적하고 단죄하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타인을 향했던 날카로운 칼날을 거두고, 지난 과거 속 미처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지금 여기의 내가 온전히 품어내는 작업. 그 자기 통합이 선행되지 않은 전문성은 모래 위에 세운 성벽과 같다.

나를 먼저 구원하고 통합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미숙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경계를 세울 수 있다. 이건 마음훈련소가 지향하는 주체적 전문가의 유일한 조건이기도 하다.


나를 먼저 구원하라: 치명적인 학습의 오류


한 번은 심리학을 함께 배우는 친구가 물어왔다. 배운 지식을 아이들에게 적용해 가르쳐주고 싶은데, 도무지 진척이 없어 막막하다는 토로였다. 나는 그에게 배우는 지식 전부를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 시절의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라고 말해줬다. 이건 나를 암흑의 늪에서 이끌어줬던, 심리학 비전공자인 심리 멘토의 깊이 있는 조언이기도 했다.

자신조차 품어본 적 없는 이가 어떻게 타인의, 혹은 아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품을 수 있겠는가. 심리학을 배울 때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이론을 타인에게 먼저 대입해 분석하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대상관계의 중심은 전적으로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먼저 마주하고 그 결핍을 스스로 채워본 사람만이, 비로소 타인을 향한 '공격적 분석'이 아닌 '단단한 수용'을 시작할 수 있다. 나를 먼저 구원하지 못한 지식은 그저 상대를 통제하려는 도구에 불과하다.


HSP가 감각하는 '에너지의 일치'


특히 기질적으로 민감한 HSP(Highly Sensitive Person)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상대의 위로가 그저 박제된 텍스트인지, 아니면 자신의 심연을 통과해 길어 올린 실전의 지혜인지 말이다. 나를 고쳐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묵직한 에너지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권위다.

이미 삶 속에서 자신을 통제하려는 이들에게 숱하게 시달리며 지쳐있는 그들 앞에서, 우리는 전문가로서 평가를 하고 싶은지 혹은 공명을 하고 싶은지 먼저 선택해야 한다. 타인을 분석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차가운 평가에는 결코 치유의 에너지가 깃들 수 없다.

진짜 전문성은 타인을 분석하는 날카로움이 아니라, 나를 고쳐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그 묵직한 에너지의 일치에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구원하며 세운 단단한 경계 위에서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환대할 때, 비로소 민감한 이들은 방어 기제를 내려놓고 진정한 치유의 공명 속으로 들어온다.




투사를 넘어, 경계가 있는 진정한 공감으로


정해진 학위와 자격이라는 성벽 안의 전문가들은, '성벽 밖의 전문가가 투사 때문에 위험하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그러나 그 말 또한 결국 그들 자신의 투사였을 뿐이다. 타인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려는 그 비겁한 프레임 안에는, 정작 스스로를 직면하지 못한 결핍이 숨겨져 있다.

투사는 나를 온전히 직면하고 극복해 낸 뒤에야 비로소 멈춘다. 내 안의 암흑과 미숙함을 온전히 품어본 사람만이, 비로소 타인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덧씌우는 일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야 내담자의 감정을 똑같이 느껴버리며 함께 늪으로 빠지는 '동감'이 아닌, 내담자의 고통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그를 환대할 수 있는 '진정한 공감의 경계'가 마련된다.


심리학은 '삶의 전리품'이다


심리학은 머리로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인생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얻어낸 지혜다.

본래 심리학 이론이란 수세기를 거쳐 수많은 전문가가 마음의 병으로 삶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해 온 결과물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어져 온 그 숭고한 노력들을, 고작 학위와 자격이라는 성벽으로 가로막을 수는 없다. 심리학은 특정 집단이 독점하거나 누군가의 색다름을 거세하기 위해 존재하는 폐쇄적인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진정으로 부족했던 것은 석박사 학위나 오버스펙의 자격증이 아니다. 나를 먼저 구원해 본 처절한 사유, 그리고 소비자의 불만까지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실전의 책임감이었다.



06화부터 '브런치 스토리 멤버십' 전용 유료 연재로 전환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필자에게 자격의 학회를 물었던 단 한 사람의 정체와, '인사'를 빌미로 자행되는 일상의 서열 전쟁 실체를 다룰 예정입니다. 가짜 권위를 해체하고 성벽 밖에서 주체적 전문성을 세우는 실전 매뉴얼은 멤버십 구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의 노트: 상처 입은 치유자 (The Wounded Healer)]

심리학자 칼 융(C.G. Jung)은 상담자가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해 본 경험이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을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상처 입은 치유자'라 부릅니다.

자신의 결핍을 외면한 채 학위와 이론이라는 성벽 뒤에 숨어 타인을 분석하려 들 때,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오류에 빠집니다. 스스로를 구원해 본 적 없는 이가 휘두르는 지식은,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덧씌우는 투사이자 폭력이 될 뿐입니다.

당신이 믿고 있는 그 견고한 이론적 전거(Reference)가 혹시 누군가에게는 가스라이팅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제 좁은 전공의 텍스트를 덮고, 나를 먼저 마주하고 품어내는 '자기 구원'의 시스템을 마주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