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밖 다문학적 심리상담사의 치열한 윤리강령 탈출 생존기 그리고 해방기
선과 악의 이분법, 그 익숙한 함정
모든 사건 앞에서 우린 늘 한쪽의 입장에 자신을 이입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게 정의인 것처럼 다른 나머지 한쪽을 잘못이라 판단한다. 갈등의 상황을 사람의 존재 자체의 문제로 치환하여 선과 악을 나누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의 현장에서는 선과 악으로 구분 지었던 익숙함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이 숨 쉴 틈 없이 열린다.
갈등 조정의 상황은 서로 다른 두 정의와 가치가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응급실 상황과도 같다. 이를테면, 3시간을 기다린 골절 환자는 '순서'라는 정의를 외치고, 의식 불명의 응급 환자를 맞이한 의료진은 '생명의 위급함'이라는 정의를 따른다.
누가 나빠서 생기는 혼란이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절박함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는 시스템의 문제일 뿐이다.
'입장'이라는 이름의 다채로운 시각
갈등은 반드시 선과 악으로만 나뉘지 않는다. 삶 앞에서 각자가 겪어내고 쌓아왔던 다채로운 입장을 만나는 것뿐이다. 이웃 갈등도, 학교폭력도 결국 각자의 '공간'과 '시스템' 속에서 최선을 다하던 입장들이 엉켜버린 결과물일 때가 부지기수다.
내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다면, 타인에게도 그런 결이 있음을 넓게 깨우칠 수 있다. 한 사람의 가치만 늘 중요할 수 없기에, 때로는 비율을 조율하고 언어를 정돈하여 합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조율 과정은 늘, '자신의 가치만 옳다'는 비합리적 신념 앞에 막혀버리고 만다.
전공이라는 좁은 평수에 갇힌 오만
근래 필자가 온라인에서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전문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자신만의 전문성에 자부심을 가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자신과 조금 다른 길을 걷거나 생소한 이력을 가진 이들의 자기소개나 게시글에 유난히 불편해하며 불만을 늘어놓는 이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 예로 들어보자면, 어떤 이들은 전문가의 자격을 '과거의 전공'이라는 좁은 평수에만 가두려 한 채 다른 전공자들을 불완전한 전문가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안쓰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한 그 중간점의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경영/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부를 창출할 궁리조차 하지 말아야 하며,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은 부모는 아이를 가르칠 자격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삶은 결코 단일 전공의 텍스트 안에 머물지 않는다. 세상과 환경은 우리가 그렇게 안락하게 안주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철조망'을 넘어서는 다문학적 시스템
심리학계의 윤리규정에서 '윤리'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검열하는 말들은, 사실 치유가 아닌 '마음의 철조망'이었다. 그들은 전공자가 아니면 양심이 없다고 비난하지만, 진짜 양심은 박제된 이론 속에 있지 않다. 진짜 양심은 내담자가 발 딛고 선 일상의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 속에 녹여져 있을 뿐, 개인이나 소수의 기준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각자가 구축해 가는 치유의 공간
마음의 질서는 박제된 텍스트가 아니라 유기적인 시스템에서 나온다. 교육학으로 변화의 동력을 설계하고, 경영학으로 그 변화의 지속 가능성을 구축하며, 심리학으로 내면의 보이지 않는 공백을 메운다. 여기에 법학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을 더하고 영문학으로 소통의 지평을 넓힐 때, 비로소 인문과학이라는 거대한 체계 안에서 나를 지키는 온전한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다.
성벽 밖에서 전수하는 삶의 기술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현장, 그리고 한 사람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심리 상담. 이 두 영역은 윤리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검열하는 성벽 밖에서 불완전하지만 현실의 삶에 맞닿아있어야 한다.
차별화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기꺼이 환영받고 인정받을 마인드셋이지만, 그걸로 진짜 차별하려고 들면 곤란하다.
이론을 넘어 사람을 살리는 진짜 '삶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분야를 막론하고 절실하게 찾고 있던 전문가가 아니었을까?
[심리학자의 노트: 전거 지향성(Reference Orientation)] 심리학자들은 개인이 판단의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를 '전거 지향성'이라 부릅니다. 갈등의 상황에서 오직 '나의 가치'만을 유일한 전거(Reference)로 삼을 때, 우리는 타인의 절박함을 '악'으로 규정하는 오류에 빠집니다.
당신이 믿고 있는 그 유일한 전거(Reference)가 혹시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제 좁은 전공의 텍스트를 덮고, 삶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마주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