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밖 다문학적 심리상담사의 치열한 윤리강령 탈출 생존기 그리고 해방기
전문가의 안위가 내담자의 고통을 가릴 때
누구나 자격을 얻으면 그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 안락함에만 매몰되는 순간,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잃고 치유의 본질도 놓치게 된다.
결국 남는 것은 내담자의 안녕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려는 전문가의 '욕구'뿐이다.
과거, 법만 전공한 이들이 의학계의 폐쇄적인 생리를 읽어내지 못해, 의료 현장의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구제하지 못하고 N차 가해와 같은 판결을 내렸던 시대가 있었다. 전문 지식이라는 거대한 장벽 뒤에 숨은 부당함을 법의 잣대만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견고한 성벽을 허문 것은 의학을 전공한 뒤, 독하게 법조인의 길을 다시 밟은 이들이었다. 내부의 생리와 생존 논리를 꿰뚫어 보면서도, 동시에 외부의 공정한 법적 기준을 들이댈 수 있는 '다문학적 시각'이 있었기에 비로소 피해자의 억울함을 판결로 되살려낼 수 있었다.
지금의 심리학계도 마찬가지다. 상담자만을 위한 상담, 소속 집단만을 위한 윤리에 갇혀 내담자의 억울함을 외면한다면 그 집단은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사적 기관이 내리는 '사적 제재'의 위험성이다. 그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명예와 직업의 자유를 집단 내부의 규정이라는 명분 아래 너무나 쉽게 다루곤 한다.
특정 학회의 규격 밖의 치유는 정말 '가짜'일까요?
기존 학계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통합적 접근으로 성과를 내는 전문가가 나타나면, 특정 집단은 "윤리에 어긋난다"는 낙인을 찍어 조직적인 비방을 퍼붓기도 한다. 벌써 필자가 홀로 모아둔 관련 비방 자료도 상당한 수준이다.
내담자가 실제로 치유되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진정성이 있었는지는 뒷전이다. 오직 자신들의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전문가의 숨통을 조이려 든다.
이것은 건강한 자정 작용이라기보다, 집단의 힘을 빌린 사적인 압박에 가깝다.
누군가 심리상담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할 때조차, 깊이 있는 관점에서의 공감보다 "어느 학회 소속이냐"부터 묻는 태도는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특정 학회의 내부인이라고 하면 내담자가 국가 시스템에 따라 소비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상태일 때, 특정 학회의 사적 제재 시스템에만 의존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반면, 외부인이라면 '무자격자' 프레임을 씌워 신랄하게 공격하는 아주 좋은 타깃으로 삼는다.
피해자의 고통은 경찰이나 소비자원 같은 국가 시스템을 통해 정당하게 구제받아야 할 공적인 권리다.
이 권한을 사적 기관에 위임하는 것은, 소비자의 주권을 판매자 집단의 처분에 맡기는 위험한 선택이다.
자격을 가진 자가 안전하고 싶은 욕구가 '무소불위의 권리'로 둔갑할 때, 심리학은 더 이상 치유가 아닌 권력이 된다. 우리가 가진 자격증이라는 성벽이 보호하는 것은 내담자의 눈물인지, 아니면 집단의 안위인지 함께 고민해 보길 소망한다.
진짜 심리학은 헌법 위에 군림하는 오만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내담자의 억울함을 함께 정돈해 주는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가 자격을 정말 '최소한의 전문성 보증'으로 본다면, 자격의 권력을 키우고 서열화를 시키는 대신 내담자의 입장을 더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소통과 협력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기에 순간마다 건강하지 못한 순간이 올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의 태도를 더 건강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권위를 위해 타인의 삶 전체를 차별하는 공포 마케팅, 이제는 멈춰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심리학자의 노트: 사회적 폐쇄 이론] 사회학자 프랭크 파킨(Frank Parkin)은 특정 집단이 학위나 자격 같은 기준을 세워 외부인의 진입을 막고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을 '사회적 폐쇄(Social Closure)'라고 정의했습니다. 전문가 집단이 내담자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자격의 무결성만을 강조할 때, 그것은 치유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성벽이 될 위험이 큽니다. 진짜 전문성은 닫힌 성벽 안의 번호가 아니라, 열린 현장에서의 실천적 지혜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