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일 만에 함락, 춘천만 버틴 이유

by 너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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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춘천 함락 작전 실패 / 출처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6·25전쟁 개전 직후, 38선의 국군 방어선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서울은 3일 만에 함락됐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곳, 춘천만은 달랐습니다.


38선에 배치된 한국군이 대부분 돌파당한 가운데, 중동부전선의 국군 6사단만이 유일하게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이 '3일의 버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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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춘천 함락 작전 실패 / 출처 : 연합뉴스(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북한군의 초기 작전 계획


북한의 작전 계획은 명확했습니다.


서부전선의 1군단이 서울을 점령하는 동안, 2군단은 춘천과 홍천을 돌파해 수원 방면으로 쾌속 진격하여 수도권에 몰려 있는 국군 주력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 섬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전이 성공했다면 대통령과 정부 요인, 육군본부까지 포로가 되어 조기 항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전후 평가입니다.


북한군 2군단은 제2사단을 화천~춘천 축선에, 제12사단을 인제~홍천 축선에 투입했습니다.


목표는 공격 개시 첫날 가평~홍천을 점령하고, 이틀째에 덕소에서 한강을 건너 서울 동남쪽에서 국군의 퇴로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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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춘천 함락 작전 실패 / 출처 : 연합뉴스(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열악했던 국군 6사단의 전력


이에 맞선 국군 6사단의 상황은 열악했습니다.


사단장 김종오 대령 휘하의 6사단은 가평에서 현리까지 84km에 달하는 넓은 정면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화기와 장비 수준은 북한군 2군단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열세였고, 적은 국군이 보유하지 못한 대구경 곡사포와 자주포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6사단에게는 두 가지 강점이 있었습니다.


적의 주공이 화천~춘천 접근로로 올 것을 예상한 6사단은 포병 화력을 춘천에 집중 배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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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춘천 함락 작전 실패 / 출처 : 연합뉴스(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제7연대는 방어지역에 철근 콘크리트 대전차진지를 구축했는데, 육군본부의 재정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연대는 사단 공병중대와 춘천 시민,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전쟁 발발 한 달 전인 5월 하순에 공사를 마쳤습니다.


또 하나는 정보였습니다.


개전 직전, 북한군 전차병 1명이 귀순해 전차 40대와 대규모 병력이 화천에 집결해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연대장은 수색대 30명을 잠입시켜 이를 확인한 뒤, 적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대비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6월 25일, 소양강 전투의 시작


6월 25일 새벽 5시, 북한군은 30분간의 공격 준비 사격 후 자주포 10대를 앞세워 옥산포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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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춘천 함락 작전 실패 / 출처 : 연합뉴스(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이때 대전차포중대의 심일 소위가 적 자주포를 파괴해 장병들의 사기를 드높였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포병이었습니다.


북한군은 논밭 지대에서 완전히 노출된 채 정면 공격을 반복했고, 6사단 포병대대의 정확한 포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소양강을 도하하지 못했습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소양강 백사장이 피로 물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히려 국군 7연대 1대대는 개전 당일 저녁 반격을 가해 적을 북한강까지 추격했으며, 다음 날에는 옥산포로 집결 중이던 북한군 1개 대대를 기습 공격해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공격이 막히자 북한군 2군단장은 홍천 방향으로 공격하던 12사단의 일부를 춘천 방향으로 전환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북한군은 소양강을 넘지 못했습니다.


6사단은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단독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간을 벌어낸 3일


서울이 함락되면서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전투에서 북한군 2군단에 사상자 6,792명, 포로 122명의 타격을 입히고 다수의 장비를 노획했습니다.


전략적 의미는 수치 이상입니다.


6사단이 춘천~홍천 축선을 통한 적의 진출을 지연시킴으로써, 서울 점령 후 국군 주력을 포위 섬멸하려던 북한군의 초기 계획은 완전히 무산됐습니다.


서부전선의 국군은 가까스로 한강 방어선을 형성해 6일간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하고, 유엔군이 증원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패배의 책임을 지고 북한군 2군단장 김광협, 2사단장 이청송, 12사단장 전우가 모두 해임됐습니다.


북한군 스스로의 평가가 이 전투의 충격을 증명합니다.


춘천지구전투의 성공적 수행으로 국군 6사단은 '구국의 사단'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습니다.


38선 전 구간이 뚫린 1950년 6월, 유일하게 버텨낸 그 3일이 대한민국의 시간을 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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