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의 느린작업실 602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좋아하는 남자친구 없어요?”
#그 남자, 정원
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엔 좋아하는 여학생 사진을 확대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중학생 꼬마 녀석들의 소란스러움이, 젊은 시절 사진을 복원해 달라는 아주머니의 옛 시절에 대한 향수가, 혼자 찾아와 영정사진을 찍는 할머니의 눈물겨운 사연들이 있습니다. 나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거든요. 이제 겨우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이별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당돌하지만 생기발랄한 그녀가 매일 찾아오면서 멈춰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조용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녀를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좋은 미소를 스윽 짓게 됩니다. 어느새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이 일상이 돼 버렸고 그녀를 만나면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내겐 너무 늦은 사랑이란 사실을 깨달은 순간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하지만 그녀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
#그 여자, 다림
난 하루하루가 고달픈 주차단속원입니다. 사사건건 차주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주차단속일은 그야말로 전쟁이에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단속차량 필름을 맡길 사진관이 근처에 있다는 거죠. 20대 후반이라고 우기는 30대 아저씨가 주인인 모양인데 그곳에 가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집니다. 고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휴식처라고나 할까요? 이 아저씨, 나만 보면 자꾸 웃네요. 처음엔 왜 이러나 싶었는데 자꾸 보다보니 싫지만은 않아요. 이상하죠? 아저씨를 볼 생각에 화장을 해보기도 했구요, 사진관에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자꾸만 가고 싶어지네요. 한번은 ‘별자리를 빙자’해서 ‘내게 다가와요’ 하고 신호를 보냈는데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반응이 미지근해서 화도 조금 났어요. 그런데 이 아저씨 갑자기 사라졌어요. 계속 닫혀있는 사진관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려보기도 하고 편지를 써보기도 했는데 나타나질 않아요. 며칠 후면 파견근무를 가야하는데, 아저씨에게 확인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내 기억 속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