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널스 Nov 04. 2022

미국 전문간호사 취업기

첫 직장이 나를 찾아오다

대학원 졸업을 전후로 주위에서 물어본다.

 

"그래서, 졸업하고 계획이 뭐야?"

"글쎄, 이 동네에 있는 가정의학과에 취직하려고요."

 

담담한 듯 이야기했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

.

.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 간호사 시절,

결혼과 동시에 남편 직장을 따라 미국 동부 끝에서 서부 끝으로 이사 가게 된 나는

최연소 간호사에서 순식간에 경력단절녀가 되어버렸다.

짧은 경력을 가지고 재취업을 하는데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취업 이후에도 그동안의 공백을 메꾸느라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다시는 커리어를 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두 달 만에 대학원을 시작했다.

클래스에서 유일한 외국인일 건 예상했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터졌고 모든 실습이 하루아침에 중단되었다.

코로나는 대학원 생활 내내 계속되었고 혼란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2년을 버티고 버텨서 간신히 졸업을 했다.

그런데 내가 전문간호사 대학원을 졸업하는 시점에,

남편은 1년간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라 간의 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

.

미국에 사는 교포에게 한국에서 1년을 살 수 있는 흔히 오지 않는다.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에 가장 비싼 비행기 값을 내고 한두 달 한국을 다녀오는 것도 사치이거늘...

한국에서 1년이나 살아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혹여 졸업 후 공백 때문에 이번에도 취업을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렇다고 취업시장에 뛰어들자니 나에게는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취업이라는 무거운 짐이 남아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

.

.

한국에서 방문자로 지내는 시간은 몇 배로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미국 돌아가기 3개월 전 어느 날 새벽이었다.

- 하고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서 전화기를 확인했다.

마지막 학기 실습을 가르쳐주던 프리셉터였다.  고민과 상황을 알던 그녀는 본인이 일하는 가정의학과에 자리가 났으니 지원해보라고 했다.

나에게 직장보다 가족이 먼저니  한국을 다녀오라던 당부하던 그녀였다.


졸업한 지 9개월이나 지난 학생을 이렇게 생각해주는 마음에 살짝 눈물이 돌았다.

그녀의 추천에 힘입어 한국에서 화상 인터뷰 기회가 주어졌고, 정식 오퍼를 받게 되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취업'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와 그녀와 함께 한 저녁식사에서 그녀는 처음엔 힘든 게 당연하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그녀는 본인이 처음 전문간호사가 되었을 시절, 멘토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힘들었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면 후배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나는 인복이 많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내가 인복이 많긴 한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뜩 생각했다. 나 같은 초보가 우왕좌왕하는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전문간호사로서 나의 첫 직장 생활을 기록해 보려 한다.

.

.

.

 

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

 

1년 전 막연히 "이 동네 가정의학과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한 나의 말은 다음 주면 현실이 된다.

오늘은 곧 오피스 메이트가 될 또 다른 동료가 가운과 명함이 나왔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는 말과 함께.


애사심은 출근  가장 불타는 법이라고 하지만,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직장이라면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길  같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