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심리학에서 보는 adhd
미래가 흐릿한 뇌의 진짜 사정
ADHD를 가진 아이나 어른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게으르다. 의지가 약하다. 왜 그렇게 산만하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작아집니다.
사실은 누구보다 애를 쓰고 있는데도요.
ADHD를 가진 사람들은
평생 고치기만 시도하다 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다르게 질문할 때 시작됩니다.
나는 왜 이러냐가 아니라
내 뇌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시간 근시가 있다면
긴 목표를 강요하기보다
짧은 목표를 잘게 쪼개야 합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면
피드백이 빠른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트릭스터 에너지가 있다면
그 에너지가 파괴로 흐르지 않도록
의미 있는 놀이터를 찾아야 합니다.
억지로 길들이는 게 아니라
활용하는 쪽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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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를 뇌과학 쪽에서 조금 다르게 보면,
이건 주의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시간을 느끼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열쇠가 하나 나옵니다.
시간 근시라는 개념입니다.
근시가 있으면
멀리 있는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죠.
ADHD 뇌도 비슷합니다.
다만 흐릿한 게 글씨가 아니라 미래의 보상입니다.
한 달 뒤 시험 성적
몇 년 뒤의 꿈
미래의 안정감
이런 것들이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몸으로는 잘 안 느껴집니다.
너무 멀어서요.
여기엔 도파민이 관련됩니다.
도파민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물질이 아니라
미래의 보상을 믿게 해주는 연료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불편해도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거야
지금은 지루해도
끝까지 하면 성취감이 올 거야
이 감각을 뇌에 붙잡아두는 힘.
그 힘이 약하면
현재의 불편함이 너무 크게 느껴지고
미래의 보상은 너무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ADHD 뇌는
자꾸 지금 당장 반응하는 자극을 찾습니다.
게임, 쇼츠, 알림, 새로고침.
오늘 당장 도파민이 들어오는 길로요.
이게 산만함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성격 문제가 아니라
미래가 흐릿하게 보이는 뇌가 선택하는 생존 방식일 수 있습니다.
ADHD 뇌는 선형적으로 움직이기보다
동시에 여러 자극을 포착합니다.
A에서 B로 차근차근 가는 사고보다
A B C D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사고.
겉으로 보면 혼란스럽고 산만해 보이지만
이 방식에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한 점으로 모든 에너지가 모이는 순간.
우리가 말하는 초집중입니다.
재밌는 일을 만났을 때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을 붙잡았을 때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일을 만났을 때
ADHD 뇌는
그 순간 폭발적으로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집중은 보통 사람의 집중과 결이 다릅니다.
단순히 오래 앉아 있는 집중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그 일로 바뀌어버리는 집중.
초집중은
산만함을 대가로 얻은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보상이 와야 움직이는 뇌가
드물게 진짜 의미를 발견했을 때
그 의미에 도파민이 붙고
그때부터는 미친 듯이 몰입합니다.
여기서 한 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융의 언어로 ADHD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융은 인간의 마음속에
여러 원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중 트릭스터는
규칙을 깨고, 경계를 넘고, 혼란을 만들지만
결국 그 혼란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여는 존재입니다.
ADHD 뇌가 그렇습니다.
선형적 시간표
반복 과제
정해진 규칙
이런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학교나 조직에서는 문제처럼 보이죠.
하지만 동시에
경계를 넘는 사고
예측 불가능한 연결
새로운 해결책
이 힘으로
예술, 창업, 기술, 기획, 연구 같은 분야에서
돌파구를 만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ADHD 뇌는
사회가 너무 획일화될 때
무의식이 보내는 하나의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