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증 검사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자율신경 불안으로 일어나는 몸의 신호들

by 김신형


* 세상이 핑 도는 당신에게, 병원 검사지는 말해주지 않는 것들


“세상이 그냥 빙글빙글 돌아요. 이석증이라는데 약을 먹어도 그때뿐이고... 이제는 집 밖에 나가는 게 공포예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50대 여성 A씨의 걸음걸이는 위태로웠다.

마치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사람처럼, 그녀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눈동자에는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피로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녀의 가방 안에는 지난 1년간 전국 유명하다는 병원을 전전하며 찍은 MRI 결과지와 이비인후과 처방전이 가득했다.

뇌도 깨끗하고, 심장도 튼튼하며, 빈혈도 없다는 진단.

하지만 그녀의 세상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사정없이 흔들렸다.



* 내 몸의 브레이크, 자율신경이 비명을 지를 때


우리는 보통 어지러우면 귀(이석증)나 뇌(중풍)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말이 어눌해지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뇌의 경고라면 당장 응급실로 달려가야 한다.


하지만 A씨처럼 모든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개월, 수년씩 어지러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율신경의 회로를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몸에는 외부 자극에 대응해 에너지를 쓰고(교감신경), 다시 휴식하게 만드는(부교감신경) 자율신경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마음의 평화가 깨지면 뇌의 감정 조절 센터인 편도체에 과부하가 걸린다.


이 과부하는 자율신경을 미치게 만든다.

과민해진 자율신경은 귀 깊숙한 곳(내이)으로 가는 미세 혈관을 꽉 조여버린다.

혈액순환이 안 되니 림프액의 압력이 변하고, 귀 안의 평형 감각을 담당하는 조직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이석증 치료를 해도, 뇌 검사를 해도 낫지 않는 신경쇠약성 어지럼증의 정체다.


A씨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장소는 의외로 마트였다.

넓고 환한 마트의 형광등 불빛 아래 서면 머리가 붕 뜨고 바닥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여기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누가 나를 도와줄까?”

이 막연한 공포는 다시 뇌를 자극하고, 자율신경을 더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결국 장바구니를 내팽개치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수많은 날들.


그녀에게 어지럼증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이자 자존감의 붕괴였다.

하지만 그녀를 진짜 무너뜨린 것은 남편의 한마디였다.

“검사하면 다 정상이라는데, 당신은 정신력이 왜 그렇게 약해? 좀 참아봐.”


남편은 몰랐다. 퇴직 후 불안한 노후를 위해 무리하게 투자한 주식 숫자가 곤두박질칠 때마다, 아내의 뇌 속 편도체도 함께 타들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30년 결혼 생활 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섭섭함과 경제적 불안이 갈 곳을 찾지 못해, 결국 아내의 귓속 혈관을 틀어막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어지러움은 잠시 멈추라는 뇌의 간절한 신호

A씨의 어지럼증은 약으로만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원망, 노후에 대한 불안, 그리고 아픈 척하지 말라는 비난에 상처받은 마음이 몸을 통해 내뱉는 마지막 비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밀한 MRI 촬영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당신이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몸과 마음이 너무 오래 긴장해서 뇌의 회로가 잠시 꼬인 것뿐입니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는 신호예요.”


이 한마디에 A씨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 눈물은 굳어 있던 자율신경을 녹이는 첫 번째 해독제였다.




* 세상의 축을 다시 세우는 법

어지러움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이들이 오늘도 병원을 전전하며 자책한다.

검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다른 병이 있는 건 아닐까?, 불치병은 아닐까?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몸은 정직하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는 반드시 신체 어딘가에 고여 독이 된다.

어지러움은 당신의 세상이 무너지는 징조가 아니라, 너무 빨리 달려온 당신의 삶에 정지 버튼을 눌러달라는 뇌의 간절한 부탁이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이 핑 돈다면, 검사지를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당신이 억눌러온 불안과 분노가 자율신경이라는 통로를 타고 당신의 평형을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진정한 치유는 내 몸의 고통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전하는 숨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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