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라는 감옥, 그 창살이 날개가 될 때 : 김혜순의 시와 융
우리는 흔히 고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고통은 느끼는 단계를 넘어서 우리 몸에 지도를 새겨 넣기도 합니다.
슬픔이 깊어지면 등이 굽고, 불안이 극도로 심해지면 호흡이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의학적, 한의학적으로도 검증된 사실입니다.
감정의 변화, 마음의 불편함은 자율신경계를 통해서 뇌의 변화를 일으키고 신체적인 몸의 언어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몸으로 시를 쓰고, 불편한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김혜순 시인의 날개 환상통은 이런 몸의 언어를 시로 써내려 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몸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입니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의 관점에서 보면 억압된 무의식이 신체를 통해 드러내는 과정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은유가 아닌 현상 : 몸이라는 기계의 오작동
융은 자아가 감당하지 못하는 거대한 에너지,
즉 무의식의 그림자가 몸으로 투사될 때 신체적 변형이나 환각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김혜순의 시에서 마스카라가 녹아 흐르고, 손바닥 속 나무가 자라 아버지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장면은 단순히 시의 언어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감정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대,
추상적인 마음이 구체적인 물리적 실체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신체화라고 하지만, 시의 언어로는 변신이라 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우리 등 뒤에 보이지 않는 날개를 돋게 하고,
그 날개는 치유가 아닌 환상통으로 남습니다.
슬프게도 우리의 감정은 아름다운 언어가 아니라,
불면증이나 두통, 어지럼증, 만성적인 복통과 위경련 등의 고통스런 몸의 시를 써내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감정의 기하학 : 초현실은 뒤틀린 현실의 모양이다
초현실을 허구라 생각하기 쉽지만,
융에게 무의식의 상징은 현실보다 더 단단한 논리를 갖습니다.
김혜순이 보여주는 얼음 가방이나 두개골을 움켜쥔 아버지의 나무는 감정의 압력이 강해져서 세계를 물리적으로 비틀어버린 기하학적인 결과물입니다.
강한 압력이 더해지면 탄소 구조는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지독한 고통의 압력은 일상의 모습을 초현실적인 오브제로 변형시킵니다.
얼음나라 밖의 너와 안의 나라는 분열된 이미지는
통합되지 못한 자아의 양가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세계와 나를 구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압력이 심해지면 여기에 더해서 나와 내속의 또다른 내가 혼란스러워지고
내가 버린 감정이 몸의 언어로 고통과 슬픔을 물리적, 신체적인 언어로 치환하기도 합니다.
3. 내장의 풍경이 된 도시 : 시스템이 새긴 통증
김혜순의 시에서 서울, 지하철, 강변대로 같은 도시의 모습은 내장과 피, 나무와 연결됩니다.
이것은 고통의 존재론적 정치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칼 융은 개인의 무의식이 단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집단 무의식과 연결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불안은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우리가 속한 도시 사회 체제가 가하는 압력의 결과물입니다.
도시의 소음은 우리 자율신경계의 떨림과 같습니다.
내 안의 통증은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앓고 있는 열병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4. 징후에서 변형으로 : 건널 수 없는 통로를 걷다
시인은 현실에서 초현실로 넘어갈 때 서두르지 않습니다.
죽으려고 몸을 숨기러 가던 저 새가 나를 돌아보는 순간처럼,
사소한 징후와 관찰을 통해서 서서히 세계를 비틀어 봅니다.
정신분석 자율신경의 치료 역시 이와 동일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완치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서서히 사소한 꿈의 파편과 내 몸의 문제를 조금씩 따라가고 치료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지형이 변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시의 문장은 그 건널 수 없는 두 세계를 이어주는 비밀스런 통로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혜순 시는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제발 나를 떠밀어주세요, 아버지 이제 그만 내 몸에서 나와주세요라는 외침은 해결이 아니라 반복되는 파동으로 계속됩니다.
치료의 끝 역시 완전히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통을 바라볼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얻는 것입니다.
조금씩 내 문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인위적인 억제로 당장 불안을 끄려고 억압의 방식을 쓰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습니다.
조금씩 마음의 문제를 돌아보고 내 몸의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정신적인 위로와 마음의 평온을 얻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