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조절에 대한 레스 카터 박사의 조언.
분노조절을 못 한다는 것은 단지 화를 폭발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화를 참고 욕구를 억제할 때 더 문제가 되고, 화병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화낼 줄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성격 좋다는 말만 듣고 살았는데, 왜 저만 이렇게 밤마다 잠을 못 자고 속이 뒤집히는 걸까요?
진료실에서 만나는 만성 불면증과 신경성 위염 환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고백입니다.
그분들은 억울해합니다.
남에게 상처 준 적도 없고, 늘 참으며 살아온 '착한 나'에게 왜 이런 가혹한 신체적 고통이 찾아왔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이 병의 시작일 때가 많습니다.
분노조절이 안 될 때 왜 화병 증상으로 이어지고, 몸의 문제로 이어질까요?
1. 분노는 소리 지르는 것만이 아닙니다: 7가지 얼굴
미국의 심리학자 레스 카터는 분노에 7가지 얼굴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화를 발산하는 폭발은 그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정작 우리 몸을 망가뜨리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변형된 분노들입니다.
억압: 난 괜찮아 라며 감정을 무의식 밑바닥으로 누르는 것.
냉소: 차가운 비아냥으로 상대를 밀어내는 것.
수동적 공격: 대답을 피하거나 은근히 늦장 부리며 상대를 골탕 먹이는 것.
자책: 화살을 나에게 돌려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신체화: 말 대신 위경련, 두통, 불면으로 화를 내는 것.
투사: 내 안의 화를 인정하지 못해 저 사람이 나한테 화났다고 믿는 것.
폭발: 참다못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만약 당신이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인데도 위장이 아프고 잠을 못 잔다면, 당신의 분노는 지금 신체화와 억압이라는 가면을 쓰고 당신의 안쪽을 공격하는 것일 수 있다고 레스 카터 박사는 말합니다.
2. 신화와 오해: 참으면 복이 온다는 몸의 사형선고
레스 카터는 분노에 대한 신화(Myths)가 우리 몸을 망친다고 경고합니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오해는 화를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많은 환자가 화를 참으면 상황이 평화로워질 거라 믿지만, 정신분석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냉혹합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분노의 리비도(에너지)는 반드시 안으로 굽어듭니다.
레스 카터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를 주목했습니다.
분노를 억압할 때 우리 몸은 전투 모드에 돌입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솟구치고, 근육은 경직되며, 소화기관으로 가야 할 혈류가 차단됩니다.
이것이 만성화되면 한의학에서 말하는 간기울결(肝氣鬱結), 즉 기운이 꽉 막혀 썩어가는 상태가 됩니다.
억울함이 물리적인 열(熱)과 압력이 되어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그럼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화를 내야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핵심은 분노라는 에너지를 비난이 아닌 욕구로 변환하는 것입니다.
3. 분노조절을 극복하는 방법
화병을 막는 분노조절의 대화: 너가 아닌 나를 말하는 연습
레스 카터 박사는 분노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화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가 미워서라기보다, 내가 바라는 어떤 욕구가 좌절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난(You-Message): 너는 왜 맨날 그 모양이야! (상대의 방어기제를 자극하고, 내 혈압만 올립니다.)
욕구(I-Message): 나는 네가 약속을 잊을 때,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해.
정신분석적으로 이는 자아의 확장입니다.
타인을 공격해서 굴복시키려는 유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내 안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성숙한 태도라고 말합니다.
4. 내려놓기의 진실
레스 카터가 말하는 치유의 종착역은 내려놓기입니다.
여기서 내려놓으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복수심뿐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곳에 숨겨진 내 뜻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통제 강박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융(Jung)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내 안의 그림자(내가 인정하기 싫은 모습)를 상대방에게 투사해 통제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저래야만 해라는 고집을 내려놓는 순간, 역설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화병의 불길도 꺼집니다.
내려놓음은 상대를 용서하는 시혜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내 손에 쥐고 있는 뜨거운 숯덩이를 나를 위해 던져버리는 가장 이기적이고 현명한 선택입니다.
5. 한의학이 제안하는 심신일여(心身一如)의 치유
마음의 매듭을 푸는 것이 상담이라면, 이미 엉겨 붙어 몸의 병이 된 매듭을 푸는 것은 한의학의 역할입니다.
간기울결(肝氣鬱結) 해소: 억눌린 분노로 인해 꽉 막힌 기운의 통로를 침과 한약으로 뚫어줍니다.
심화(心火) 내리기: 머리로 치밀어 오르는 열을 내려 뇌의 각성 상태를 해제합니다.
분노조절이 안 되어 화병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당신이 나빠서가 아니라, 당신의 자아가 그만큼 간절하게 자신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 방식이 당신의 몸을 갉아먹고 있다면, 이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레스 카터 박사는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