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 남편과 김밥을 먹다가 메일 한 통을 열고나서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경험을 했다. 몇 개월간 썼던 초고를 스무 군데쯤 출판사에 투고를 했는데 한 군데서 답이 온 것이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답메일을 썼고 다시 답메일이 올 때까지 휴대폰 화면을 노려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내 생애 처음 쓴 초고는 덜컥 계약이라는 것을 하고 말았다.
군 복무 중이었다. 출간은 2025년 1월 전역하고 나서 하기로 했다. 계약 후 처음 6개월은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다. 지인들에게 조심스럽게 소식을 알리며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다음 6개월은 정말 내 책이 나올까? 궁금했다. 현실과 비현실 그 어디쯤에 머무는 느낌이었다. 일부러 출간에 대해 말하고 다녔다. 스스로 믿기지 않아서 그랬다.
일 년이 지났을 때는 잊고 지냈다. 되려 출간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면 무서웠다. 정말 책을 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일 년 반이 지났을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작가님, 수정하고 계시죠?"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그 원고를 꺼내보지 않았다. 수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원고를 꺼내 수정하기 시작했을 땐 괴로웠다. 내 글이 너무 재미없었다.
한 번 재미없어진 원고가 다시 재밌어질리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출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남들은 간절히 원하다는 기회 앞에서 끝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실 고민이라고 썼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미 내 마음에서 출간은 멀리 사라졌다는 사실을. 고민이라는 건 출판사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에 대해서 한다는 것을.
다행히 출판사에선 나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주셨다. "이깟 책이 뭐라고, 괴로우면 할 필요가 없어요, 작가님"이라는 말에 울컥했다. 그렇게 출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잠깐이지만 작가님이란 달콤한 단어를 맛본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글을 쓰며 혹은 글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니 내 머릿속은 차올랐다.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을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대부분 머릿속에서 써서 금세 휘발되었지만 자꾸만 뭔가를 쓰고 있었다. 다시는 쓰지 않겠다는 다짐은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슬금슬금 자꾸 쓰고 싶어졌다.
도대체 글쓰기란 무엇일까? 왜 이렇게 나로 하여금 뭐라고 자꾸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걸까? 이제 머릿속의 이야기를 꺼내놓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는 책을 내겠다는 마음만 없으면 되지 않을까? 어느 순간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또 결론을 내려놓고 그에 맞는 이유들을 차곡차곡 생각해 낸다. 그렇게 결국 다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