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18일 입대했고, 2005년 8월 1일 공군 하사로 임관했다. 그리고 2025년 1월 31일 19년 6개월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역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20년이 아니고 하필이면 19년 6개월인지. 이왕 하는 군생활 20년을 꽉 채우고 나오지 아깝다고 한다. 아깝다는 말, 이건 내가 전역한다고 했을 때 아빠가 나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인데.
일단 20년이 아닌 19년 6개월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연금의 최소복무기간만 하고 싶어서였다. 연금 중에서도 가장 좋은 연금은 군인연금이라고 한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점은 전역 후 바로 다음 달부터 연금이 나온다는 것이다. 연금 개시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전역을 기준을 산정된다.
흔히들 군인연금은 20년 하면 받을 수 있다고 아는데 그 말은 틀렸다. 정확히는 19년 6개월이다. 19년 6개월을 채우고 나면 퇴직연금을 받을지 퇴직일시금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 군대에 입대한 순간부터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최소한 연금 받을 수 있을 때까진 다녀야지. 그리고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정년까지는 해야지로 바뀌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바꾸지 않았고 용감하게 전역을 선택했다.
사회에서 보면 연금을 받기에 젊은 나이지만 연금 수혜자가 되었다. 연금을 받는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비록 그 금액은 너무 적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그 돈이 나오는 게 어디냐면서 나를 다독인다. 가볍게 아르바이트 한 금액정도니 아주 적은 돈도 아니지 뭐.
전역을 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다들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반응이었다. 19년 6개월이 되면 한 번쯤 찾아오는 감기 같은 것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한 고참은 오래 설득했다.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목표가 사라져서 지금 당장 나가고 싶은 거지만 또 하다 보면 괜찮다고 했다.
내가 전역을 마음먹은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사건은 기억나지 않지만 몹시 열받았던 어느 날 포스트잇에 전역 가능한 날짜를 적어서 모니터 앞에 붙여뒀던 적이 있다. 가장 구체적으로 생각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역하기 2년 전 사무실 과장님이 갑작스럽게 전역은 선언했다. 심지어 연금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무실 과장님이라곤 하지만 함께 일한 지 20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그의 전역 선언을 듣는 순간 내 귀에서 삐-하고 어떤 알림이 울리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 나의 미래를 직감한 것이 아닐까.
구체적으로 생각해 낸 날도, 귀에서 삐- 소리가 난 것도 모두 끼어 맞추기다. 사실 계속 그만두고 싶었다. 군복도 싫었고 사격도 싫었고 훈련은 더 싫었다. 사무실의 온갖 잡다한 업무, 이를테면 쓰레기 비우기, 제설, 제초, 낙엽 쓸기 같은 것도 싫었다. 당직도 싫었다. 축선유지를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멀리 가면 보고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냥 다 싫었다.
싫은 것 앞에서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설득에도 굴하지 않고 나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거창한 계획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해봐야지라는 작은 소망정도가 다였다. 그리고 전역 전 취업을 준비하는 10개월의 기간동안 하고 싶은 걸 실컷 해보기는커녕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하고 싶은 것 대부분을 해보고 산 사람이었다. 결국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전역을 후회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웃을 것이다. 전역을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통장의 숫자가 많이 작아진 것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후회하지 않았다. 작은 숫자가 그저 귀여웠다. 19년 6개월이나 버틴 그 시간이 나는 왜 그렇게 싫었던 걸까. 왜 그렇게 도망치듯 나와버렸을까.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궁금해졌다. 왜 그렇게 싫었을까.
그래서 알고 싶어서 군대에 대해 나의 군생활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무슨 이야기들이 하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가 나를 놀라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정말 쓰다 보면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