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하 벌판이었다. 높아봐야 2층이 전부였다. 날씨는 봄인데 그곳만 마치 스산한 겨울 초입 같았다. 내 기억 속 진주는 그렇다.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고 그리고 무섭고. 아빠, 엄마와 함께 갔다. 대구에서 두어 시간 걸렸던 것 같은 데 가는 길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머리카락은 이미 잘려나간 후였다.
입대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머리를 자르러 갔다. 숏컷이요- 아주 짧게- 귀도 파주세요. 살면서 숏컷을 처음 해봤다. 후에 내가 머리를 너무 짧게 잘랐다는 걸 알았다. 결국 16주간 훈련받는 내내 조금씩 머리를 자르던 다른 동기들과 달리 나는 단 한 번도 더 자르지 않았다.
내게 군대는 남자들이 가는 곳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든 한 번은 군대를 다녀와야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입대를 하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공군이라서 논산훈련소가 아닌 진주의 기본군사훈련소에 갔다. 도착하고 보니 그렇게 황량할 수가 없었다. 낮은 건물들이 자꾸 더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연병장이라는 단어가 지금은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당시엔 운동장이라 불렀다. 민간인이라는 말도 낯설었다. 나는 연병장에 서있는 민간인이었다. 공군 부사관에 입대하기 위해서 온 사람. 멀리 한 무리의 가족들이 보였다. 아빠와 엄마를 찾는 건 쉬웠지만 애써 외면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얼마나 애닳프던지 자꾸 울고 싶어졌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제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을 떠나.. 씩씩하게.. 대한의... 뭐 그런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가족들을 돌려보냈고 우리는 모르는 서로를 의지한 채 연병장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앞으로의 일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그날로 돌아갈 때면 나도 모르게 도망치라고 말하는 내가 있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이게 도망까지 칠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랬다. 그 후 오랫동안 진주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19년 6개월을 했어?라고 묻겠지만 정말 그랬다. 진주 아니지 군대에서 도망쳤어야지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도망치지 못한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