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 있는 기본군사훈련단에 입교를 하면 일주일간은 임시로 입교하는 기간으로 신체검사나 각종 조사, 확인 등의 기간을 거친다. 이 기간은 민간인도 군인도 아니다. 그 기간이 끝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신분전환식이었다. 군인이 되기 위해 민간인의 신분을 버리고 새로운 신분으로 간다는 의미다. 물론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비 군인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요즘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16주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그때 비로소 부사관으로서 하사로 임관한다.
임관을 위한 교육을 받기 전 교육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의식. 신분전환식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다. 신분전환식 직전 군복을 받는다. 새 군복이 아닌 폐군복. 앞으로 열심히 구르려면 새 군복은 어차피 의미가 없다. 잔뜩 쌓여있는 폐군복에서 내게 맞는 것을 대충 찾아 입는다.
처음 군복을 입었으니 서로의 모습이 영 어색하다. 함께 지낼 동기들과도 아직 서먹서먹한데 옷까지 낯설다보니 저절로 집 생각이 났다. 돌아가고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군인이 되기 위해 입대를 했으면서도 군복을 입고 뭔가 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게 되었다.
몸에 맞지 않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앞으로는 절대 운동장으로 부를 일이 없는 연병장에 모였다.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이 보이지 않는 몸에 딱 맞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훗날 교관 혹은 조교라는 것을 알았다.) 허리에 손을 얹고 미동조차 없이 서있다. 곧 누군가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이제 민간인이 아니다..." 20년 전의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아무튼 입대를 했고 이제 민간인이 아니며 부사관후보생으로서 훈련을 시작한다는 뭐 그런 말이었고 곧이어 굴리기 시작했다. 굴린다는 말이 상상이 안되겠지. 진짜로 우리 몸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를 수 있게 각종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선착순 뛰어갔다오기, 엎드려뻐쳐, 내려가, 올라가,,, 멀뚱히 보다가 한소리를 듣고 머뭇거리다가 또 한소리를 듣는다. 점점 많은 것들을 지시하고 점점 더 큰소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와 비례하게 우리들의 행동이 조금씩 빨리지기 시작했다. 가뿐숨을 몰아쉬며 후회를 시작했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혼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하지만 내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마음과 달리 따로 노는 몸, 귀에서 울리는 고함소리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누워있었다. 마지막 기억은 너무 힘들다, 너무 어지럽다였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누워있었다.
기절을 했다. 처음 받아보는 체력 훈련에 극한의 긴장감이 나로 하여금 정신줄을 놓게 만들었던 것 같다. 곁에 앉아서 지켜보던 교관은 포기하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때 네!! 라고 했어야 했는데. 왜 그런 순간 자존심이 발동하고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오기가 생기는건지.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있는 힘껏 대답했다.
그렇게 또 한번 벗어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