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국장의 의리
최용석과 지상우를 브라질에 남기고 워싱턴에 도착한 정하수 부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우선 두 사람에 대한 걱정과 함께 앞으로 일정에 대한 걱정이 뒤섞이면서 안 그래도 성격이 급한 정 부장은 서울의 여행사로 전화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분노를 표시했다. 마이애미에 도착했지만 끝내 워싱턴행 비행기는 타지 못한 지상우 차장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안심시켰기에 정 부장의 화는 조금 가라앉았다.
새벽에 워싱턴에 도착한 일행은 일요일 하루의 가벼운 일정을 보냈다. 아침 식사 후 의사당을 비롯한 워싱턴 시내의 유명지를 돌았다. 1월 중순의 일요일, 날씨는 아직 차가웠다.
휴식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 반주가 한 바퀴 돌았다. 민영화 찬반의 입장을 떠나 연구단의 일원으로 식사 분위기는 좋았다. 한국을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이렇게 같이 합숙을 하게 되면 친하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낮에는 입장 차이 때문에 약간의 논쟁을 벌이지만 밤이 돼 숙소로 돌아오면 같은 밥상에서 식사도 하고 반주도 한 잔씩 하다 보면 때로는 개인적인 대화도 하고 또 때로는 현안과 관계없는 주제로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서로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신중진 교수가 입을 열었다.
“저기 이강산 실장님, 저희 때문에 고생 많으십니다.”
뜬금없는 말에 이 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가요? 고생이야 연구위원님들이 하시지요. 연초부터 집 떠나서 이렇게. 그리고 이 일이 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인데, 저희야 모든 노력을 다 해야지요.”
신 교수는 이 실장의 답이 끝나자마자 다시 물었다.
“정부와 한전에서 우리한테 여러 가지로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저 호텔에서 추가로 청구하는 비용 있잖아요? 예를 들면 세탁비 같은 거. 그런 것도 지원해 주면 안 될까요? 뭐 별로 큰 금액도 아닌데요.”
신 교수의 질문에 이 실장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실 이번 연구단의 일정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한전에 부담하고 있었다. 해외조사 일정은 모두 두 차례로 나눠 세웠는데, 1차 조사는 미주, 즉 미국, 브라질, 캐나다 세 나라로, 방문 기관은 모두 15개로 이동일까지 합쳐서 15일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이 모든 일정의 항공, 호텔, 식사 등의 비용을 원래 노사정위원회가 해야 했는데, 실질적으로는 한전이 부담하도록 정부가 결정했다. 거기에다 연구단 정식 위원 6명에 대한 일비 역시 한전이 부담했다. 신 교수가 지적한 개인적인 세탁비는 일비에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세탁비를 추가 지원해 달라는 요구를 하니 이 실장으로서는 딱히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예산을 현지에서 새로 편성할 수도 없었고.
식탁에 둘러앉은 모두 약간은 생뚱맞다 하면서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연구위원들로서는 돈을 더 주면 나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문제에 입을 댄다는 것이 그리 편치는 않은 분위기였다. 일부는 아마 신 교수가 다른 위원들 대신 총대를 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연구단장 이근석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신 교수님 말이 틀리지는 않아요. 우리 위원들이 제대로 활동하려면 모든 지원을 다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소홀해 보이네요. 이 실장님, 똑바로 새겨듣고 시정하시기 바랍니다.”
이 단장의 지적에 이강산 실장은 난처해졌다. 갑자기 없는 돈을 지출하기는 곤란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 실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한 말씀이지만, 교수님들께 지급해 드리는 일비 속에 이런 사소한 비용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예산은 한전이 세우고 집행을 하고 있는데요. 갑자기 추가 비용을 집행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이 실장의 말이 끝나자 이근석 단장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아니, 무슨 그런 식의 대답이 다 있어요? 연구단이 필요해서 예산이 더 필요하면 본사에 연락해서 조치를 취해야지, 방법을 찾지도 않고 거부합니까? 너무 무례하네요.”
이 단장이 울컥하며 화를 내자 모두가 얼어붙었다. 사실 그리 화를 낼 문제는 아닌데 언성을 높이는 모습에 모두 약간은 당황했다.
“연구단에 대한 모든 지원은 가능한 다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지금까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연구단에 대한 좀 서운한 상황이 있었어요. 당장 본사에 연락해서 우리 요구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세요.”
이 단장은 더는 이 문제를 논의하지 말자는 식으로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강석 실장 머릿속은 무엇보다 단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런 사소한 일로 단장을 기분 나쁘게 했다가 큰일을 망칠까 덜컥 겁이 났다.
“예,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상황은 좀 무안하게 마무리됐다. 신 교수의 갑작스러운 불만 표시에 대해 이 단장이 적극 옹호한 것은 물론이고 한전을 나무라는 식으로 상황이 흘러갔다. 거기에다 이근석 단장은 한전을 대표한 이강산 실장을 꾸짖는 모양새였다.
“단장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도 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한전 노조의 김종호 국장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강산 실장이 교수님들 보시기에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으시겠지만, 한전에서는 1직급입니다. 한전에서 1직급은 군대로 치면 장군입니다. 많은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고위직입니다. 그런데 공동연구단을 지원한다고 여기에 있다고 너무 무시하시는 것은 저로서는 보기 싫습니다.”
김 국장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놀라 모두가 김 국장을 쳐다봤다.
“단장님, 비록 다소 불만스러운 사항이 있으시더라고 나중에 실무자들한테 조용히 지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여기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이 실장을 질책하시는 것은 저로서는 좀 그렇습니다.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모두가 조용했다. 이 연구단에서 이근석 단장의 존재를 모두가 무거워하고 조심했는데, 노조 측의 실무자로 볼 수 있는 김 국장은 당돌하게 정면으로 대들었다. 당사자인 이강산 실장은 좌불안석이었다. 모두 이근석 단장의 반응이 궁금했다. 뭔가 크게 화를 내면 어쩔까 하는 걱정이 모두를 뒤덮었다. 그런데 이 단장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모두 알게 됐다.
사실 김종호 국장은 한전의 전력노조를 대표해서 이 연구단의 정식 멤버로 참여했다. 전력노조에서 기획국장을 담당했던 김 국장의 주된 업무는 회사를 상대로 임금교섭을 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 연구단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바로 노사정위원회의 양인식 위원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한전의 두 번째 단계 구조개편이었던 배전분할 대응 문제를 놓고 전력노조의 김준형 위원장이 고민하던 어느 날, 김 국장이 조용히 김 위원장의 방에 들어왔다.
“위원장님, 제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니, 어떤 건가요?”
“사실 이 배전분할을 막지 못하면 위원장님이나 저나 우리 집행부 모두가 물러나야 합니다. 조합원들한테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김준형 위원장은 김 국장의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야 당연하지요. 그래서 고민이 아닙니까?”
김 위원장은 탁자 위의 신문을 한쪽으로 치우며 김 국장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래, 어떤 묘책이라도 있나요? 투쟁하고 파업하고 그냥 감옥 가는 거 말고요?”
김 위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김종호 국장에게 되물었다.
“예, 노동조합이 뜻을 관철하려면 투쟁이 최고지요. 하지만 그 투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냥 의미 없는 출혈로만 끝날 수도 있습니다. 조합원들과 회사 모두가 상처를 입고요.”
김 국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렇지요. 파업이 능사가 아니지요. 사실 모두가 돌아올 수 없는 파국으로 가는 길이고요. 강경 투쟁이 아닌 최선의 방법이 있으면 우선 택해야지요. 투쟁을 위한 투쟁, 파업을 위한 파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 국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김 위원장과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국가기간산업 중 가장 중요한 전력산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노동기본권이 확실히 보장받고 파업이 노조의 일반적인 투쟁으로 자리 잡은 유럽에서도 전력회사의 파업은 흔치 않다. 전기라는 서비스의 중단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정부나 노조가 다 알기 때문이다. 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정부와 회사부터 우선 노력을 하고, 노동조합도 파업에 들어갈 때에도 아주 필수적인 부문은 파업에서 제외하는 노력을 한다.
김 국장의 설명은 이랬다. 얼마 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로 구성된 노사정위원회에 동향 선배인 위원이 있는데, 이 위원회가 노무현 정부의 참여정부의 정신을 살려 노사정 합의에 의한 사회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신임 노사정위원장은 사회적 대타협의 모범사례를 상징적으로 하나 완수하기 위해 의제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김 국장이 이 선배와 대화 중 전력부문의 민영화 의제를 제안했고, 그 위원은 매우 좋은 사례라고 맞장구를 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전력노조가 한전 민영화 의제를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대타협 의제로 상정할 생각이 있으면 본인이 노사정위원회에 정식으로 건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김준형 위원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노사정위원회에 배전분할 의제를 상정한다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저와 그 선배 생각에는 일단 위원회 내부에 전력산업구조개편을 다루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노조, 정부, 회사가 모이는 형식의 연구단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이 연구단에게 한전의 배전분할을 연구하게 하고, 연구단의 결론에 노사정이 승복하는, 뭐 그런 형식이 어떨까 합니다.”
김종호 국장은 흥분된 목소리로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노사정위원회라... 사실 나도 그런 방법을 생각해 보기는 했습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일단 대화기구를 통해 토론하고 논의하고, 뭐 그런 형식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 결론이 배전을 분할하고 한전을 계속 민영화해야 한다고 나오면 어떻게 하지요?”
김 위원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김 국장에게 물었다.
“예, 저도 그런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뭐, 한 번 해보지요. 지금 캘리포니아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구조개편이 주춤한답니다. 우리가 반드시 진다고 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연구단 구성을 잘하면 이길 수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김 위원장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쉽게 결론 내릴 문제가 아니었다.
“예, 같이 좀 고민해 보시지요. 집행부 생각도 함께 들어봐야 하겠고. 일단 고맙습니다. 좋은 의견 같네요.”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김준형 위원장은 며칠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리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크게 두 방향으로 의견은 나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런 협의체라는 것은 미리 결론을 내놓고 요식행위로 이용당하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런 협의체에 참여하는 것은 실익은 없고 오히려 노조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시민들의 참여를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을 믿고 일단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고민에 고민 끝에 노사정위원회에 한전 분할 문제를 의뢰하기로 했다. 주변의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우선 이 문제를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는 결정이었다. 만약 결론이 반대로 난다면?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인생을 건 도박일 수도 있었다.
결정이 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종호 국장과 양인식 위원의 주선으로 전력노조는 노사정위원회에 배전분할 의제를 상정하기로 했고, 정부 주무부처인 산자부도 이에 동의했다. 그래서 공동연구단이 탄생했다. 김종호 국장은 이 과정의 시작을 주도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