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화의 출발지, 제국의 수도
1월 12일 아침, 연구단 일행은 미국 전력산업 규제기관 중 최상위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를 방문했다. 연방국가인 미국은 전력산업 규제기관 역시 연방과 주 정부 단위로 구분하고 있다. FERC는 미국 전체의 전력산업을 규제하는데, 규제 대상은 주 범위를 넘어서는 송전망, 천연가스 개발과 공급, 주요 전력전원 개발, 그리고 수력발전소 건설 등을 규제한다. 나머지 화력발전소 건설과 운영, 그리고 배전과 관련된 사업은 각 주 정부 산하의 공공규제위원회인 PUC가 규제하는 방식으로 이원화 돼 있다. 어쨌든 연방 차원에서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 관련 사항을 규제하고 이를 주 정부에 권고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므로, 에너지 관련 규제기관으로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곳이다.
사실 FERC를 섭외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재송 과장이 전기위원회 이름으로 섭외를 시도했는데, FERC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연초부터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멀리까지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유로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오는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워싱턴의 주미 대사관 상무관을 동원했다. 상무관이 연방 에너지부를 통해서 방문의 목적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제야 FERC가 방문에 응했다. 사실 원래 그렇게 하는 게 처음부터 더 쉬운 방법이었을 수도 있었다.
오전 10시에 FERC 회의실에서 만난 FERC 관계자는 FERC의 법무 담당관과 변호사 두 명, 그리고 홍보담당관 두 명이었다. 연구단에서는 실무 국장급 정도를 예상했는데, 상대측은 홍보 담당자 중심으로 사람이 나왔다. 낭패스러웠다. 이들이 우리 공동연구단 방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이근석 단장은 살짝 기분이 나빴다. 우리 연구단이 무슨 신사유람단이라서 그냥 선진국 문물을 보러 온 것도 아닌데 이들은 우리를 그런 관람객 수준으로 보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회의는 시작됐다.
연구단이 안내된 회의실은 전형적인 미국 냄새가 풍기는 고풍스러운 방이었다. 목조건물 특성을 살려 부드럽고 가벼운 갈색과 회색을 섞은 톤의 회의실이었다. 짙은 색의 원형 오크 책상을 가운데 놓고 10여 개의 의자가 둘러 있었다. 연구단 방문의 목적을 김창석 교수가 유창한 영어로 간단히 설명했다. 지금까지 일정한 규칙이랄까, 정부가 섭외한 기관에 가면 정부 쪽 위원들이 방문 목적을 비롯한 사전 설명을 했고, 반대로 노조 측 기관에 가면 노조를 대변하는 위원들이 말문을 열었다.
김창석 교수의 설명이 끝나자 이근석 단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한국에서 들어서 알기에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는 각 주의 고립된 전력망을 서로 연결하는데 집중하고 있고, 발전과 배전부문 개혁은 주 정부에서 맡아서 추진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어떻게 돼 가나요? FERC 차원에서의 평가는 어떤가요?”
FERC의 소송 담당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데니스 바사폴리가 입을 열었다.
“예, 일단 간단하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미국은 주별로 독립성이 높고 전력회사의 소유 구조도 매우 복잡합니다. 그리고 민간회사의 목표는 수익을 내는 것입니다. 연방과 주 정부가 어떤 형태로 제도를 바꾸거나 규칙을 만들거나 관계없이 민간회사는 돈을 버는 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바사폴리 변호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홍보관 케서린 서먼이 입을 열었다.
“대충 이해하시듯이 미국의 전력산업 규제는 연방과 주 정부 이중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양측의 의견이 서로 상충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점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정책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입니다. 즉, 될 수 있으면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발전소를 많이 짓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연방 차원에서 보면 핵심은 경쟁을 도입해서 이런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자는 것, 이것이 에너지 구조개편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합니다.”
바사폴리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과거 미국 각 주의 송전망은 모두 주 내부의 전력을 공급하는 데 만족했지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전기를 더 싸게, 그리고 더 깨끗하게 만드는 곳에서 그렇지 못한 곳으로 전기를 수송하는 때가 됐습니다. 이게 자유화의 기본 정신입니다. 지역별 독점의 비효율성을 넘는 방법은 경쟁과 개방으로 전기 생산 비용이 저렴한 곳에서 비싼 곳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경쟁 자체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지요.”
영화배우 데미 무어를 살짝 닮은 또 다른 홍보관 데보라 세웨이카트도 거들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기에 이 경쟁은 잘 된다고, 다시 말해서 전력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고 판단하는가요?”
김명자 교수가 세웨이카트 공보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사실 이런 식의 규제철폐가 시작된 것이 불과 10년입니다.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요.”
공보관은 김 교수와 연구단을 둘러보며 약간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2년 전의 캘리포니아 사태를 의식한 태도였다.
“사실 구조개편 자체의 성패는 지금 말하기는 어렵지요. 어떤 곳에는 기대 이상으로 잘 되고 있고, 또 다른 곳에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고. 하나의 기준으로 보기는 어려워요.”
지금까지 대화를 듣고 있는 수잔 테일러 변호사가 거들었다.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김창석 교수가 질문했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거기에서는 시장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도매시장은 개방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소매시장은 규제 상태로 뒀기 때문에 말입니다. 사실 시장에서 가격이란 상황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데 한쪽은 자유화하고 다른 한쪽은 묶어두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요.”
“맞습니다. 캘리포니아 시장에는 거래 당사자가 가격의 급등에 대비해서 거래 당사자들을 보호해 주는 일종의 헤징인 베스팅 계약이 없었지요. 시장 설계가 좀 문제가 있었지요.”
테일러 변호사가 대답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회의는 이런 식이었다. FERC 관계자들은 미국의 전력산업 자유화의 기본적인 목표가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함으로써 전력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도였으나, 연방과 주 정부의 이중적 관리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시장 실패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 위원들은 시장 자유화가 원초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의를 했다. 반대로 정부 측 위원들은 자유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지역별, 나라별 특성이 중요한 것이므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오류는 자유화와 민영화의 근본적인 원인 때문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양측의 주장은 사실 정확히 일률적으로 재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쉽게 답이 나올 수는 없는 문제였다. 양측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면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었다.
FERC와의 면담을 마친 일행은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미니버스 안에서 우연히 김창석 교수와 안현필 교수가 나란히 앉게 됐다.
“안 교수님, 요새 강의는 어때요? 어떤 과목 강의하나요?”
“예, 저번 가을 학기에는 세 과목 강의했고요, 올해에는 좀 늘어날 것 같습니다.”
안 교수는 아직 정교수가 아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오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흔한 유학파가 아니라 석사와 박사 모두 서울대에서 했다. 주변에서는 미국 유학을 권했지만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러다 금융권에 잠깐 몸을 담았다가 강사 자리를 하나 얻었었다. 그리고 지금 출강하는 학교에서는 전임은 보장받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교수는 안 교수의 선배이다. 햇수로 따지면 7년 정도 선배이니 서로 존재를 알 길은 없었다. 이번에 처음 만났다. 안 교수는 김 교수를 대충 알고 있었다. 여러 곳에 얼굴을 내는 출세에 욕심이 있는 선배였다.
두 사람은 학부 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동문이라고 하나 보다. 대화가 금방 깊어진다. 각자의 은사들을 도마에 놓고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안 교수, 주로 금융 쪽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전력 쪽에 발을 들였지?”
개인적인 대화가 오가다 보니 어느새 김창석 교수는 학교 선배 분위길 말을 낮췄다. 안 교수로서는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연배도 학번도 낮기에 뭐라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한국적인 서열 문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저도 사실 의외였어요. 이런 연락이 와서. 근데 이리저리 아는 분들이 이렇게 저를 집어넣은 모양입니다. 아직 잘 몰라요.”
사실 두 사람은 지난해 가을부터 매주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 노사정위원회 공동연구단은 2003년 9월에 결성됐고, 매주 한 번 한전에 모여서 회의를 열었다. 한전이 제공하는 각종 자료, 그리고 각 교수들이 원하는 자료, 그리고 심지어 전력과 관련된 분야의 증인까지 불러서 과연 배전을 더 나눌지, 민영화가 옳은지, 아니면 모든 것을 중단해야 하는지를 놓고 토론을 진행했다. 이번 해외 조사도 그 연장이었다.
“노조 쪽에서 보니 아마 안 교수가 입장이 비슷해 보였겠지? 허허”
“글쎄요, 뭐 한전 노조와 입장이 완전히 같다고, 또 아니다고 딱 잡아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미국 금융 쪽을 공부하다 보니 두 분야가 비슷해 보였어요. 미국도 은행이 1970년대에 대대적인 구조개편이 있었거든요. 뭐 그런 측면에서 간접 경험이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안 교수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워싱턴 거리를 보며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나는 말이야, 한전 경영평가 위원으로 두 차례 참여해 봤어요. 공기업은 매년 정부의 경평에 목을 걸잖아? 그거 재밌거든. 자기들 상여금이 왔다 갔다 하니 한전에서 엄청 신경 써 주거든. 아무튼,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느낀 것이 있어요.”
김창석 교수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며 안 교수에게 말했다.
“가장 크게 느낀 건 한전이 대단하다는 겁니다. 뭐 독점이 어쩌고 비효율이 어쩌고 해도 한전만큼 하는 회사 쉽지 않아요.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는 좀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정부가 너무 목을 쥐고 있어. 자율적인 경영이 불가능해요. 그런 면에서 난 이번 기회에 한전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적으로도 자유화가 추세이고.”
안 교수는 김창석 교수를 쳐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 들었듯이 전력산업이 자유화가 쉽지 않아 보이지 않나요? 위험성이 큰데? 저도 한전의 자율성 보장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영국식으로 분할하고 민영화하는 방법 이외의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요?”
안 교수의 질문에 김 교수는,
“물론 다른 길도 있겠지만,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이 방법 같아요. 시장 실패 문제는 제도를 잘 짜면 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연구를 지금 하잖아요?”
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대답에 안 교수는 잠깐 말을 멈췄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정부의 계획은 너무 급진적이고 좀 위험해 보입니다. 일단 분할하고 하나씩 민영화하면, 그랬다 잘못되면 돌아 올 길이 없어 보이는데요?”
안 교수의 대답에 김 교수는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뭐 그리 겁을 내나? 안 가본 길이라도 한 번 가보면 되지. 난 제도적으로 보완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버스가 식당 앞에 서면서 중단됐다.
점심식사는 워싱턴에서 꽤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였다.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들어가며 안현필 교수는 생각했다. 김창석 교수도 맹목적인 민영화론자는 아니다, 좀 더 친하게 지내고 노력하면서 우리 쪽으로 생각을 바꾸도록 유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