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지발가락은 다른 사람과 생긴 모양이 다르다. 완벽하게 90도로 가로눕다시피 휘어진 모양새다. 엄마의 엄지는 둘째 발가락 아래로 쏙 파고들었고, 둘째 발가락은 자연스레 엄지 위에 얹혀 버렸다.
엄마는 젊은 날 소 뒷발에 밟혀 그리되었다고, 그날 아버지가 뿔이 나 있었는데, 엄지발가락이 휜 것은 아버지의 뿔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엄마의 발은, 말하자면 희생의 지형도 같은 것이었다. 비싼 구두도, 고급 신발도 소용없었다. 장인이 만든 고급 수제화도, 엄마에게는 ‘가위질’이 필요했다. 발가락 윗부분을 과감히 잘라내었다.
발뿐이랴, 손도 그러했다. 엄지손가락도 정확히 90도로 휘었다. 그런데 엄지손가락이 휜 것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다. 손톱에 매달린 짐이 많았던 걸까. 나는 엄마의 발가락과 손가락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리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도 발볼이 넓다. 당시에는 희고 가녀린 발이 귀하고 곱다는게 통념이었다. 그래서 볼 넓은 신발을 신어야 하는 내 발이 무척 부끄러웠다. 무리해서 하이힐을 신으면 금방 발이 아팠고, 피곤했다.
어느 날, 모 부장이 나의 맨발을 보더니, 의학드라마에서 본 의사처럼 무표정한 말투로
"무지외반증이시네요."
무지외반증, 그 단어는 의외로 나를 안심시켰다. 단순히 발볼이 넓은 게 아니라, 정식 ‘명칭’이 붙은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고. 그때부터 누가 내 발 모양에 대해 지적이라도 하면 나는 당당하게 말하게 되었다.
“아, 저 무지외반증이 좀 있어서요.”
물론 ‘~증’이라는 접미사는 대체로 병이라는 뜻이지만, 그땐 왜 그렇게 그 단어가 내 발의 면죄부로 여졌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발도 그 무지외반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지발가락 뿌리뼈가 바깥쪽으로 휘는 질환인 무지외반증은 유전과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하이힐이나 폭 좁은 신발을 즐겨 신는 이들에게 많다고 한다. 이쯤 되면, 엄마의 무지외반증은 소 뒷발과 하이힐의 합작품일 리는 없다. 그냥 유전일 뿐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뿔은 나에게서 조용히 사면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마다 진실은 조금씩 다르게 휘어져 다가오는지, 엄마는 아직도 아버지의 뿔 때문에 발가락이 그리되었다고 믿고 있다.
한 평생 무지외반증으로 고생하였던 엄마는 이제 발가락 부분을 도려낸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된다. 요양원 침대 위에서는 신발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면회를 가면 엄마는 내 손을 꼭 쥐고 말씀하신다.
“니가 보고 싶더라.”
그러다 이내 말을 바꾸며 내 손을 놓으신다.
“바쁜데 뭐하러 왔노. 안 와도 된다.”
대답 대신 엄마의 휘어진 발가락을 바라본다. 엄마의 발은 당신의 삶을 또렷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이름이 자랑스럽다.
“무지외반증”
엄마의 발, 내 발,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이어주는 조용한 유전.
"진실이 어떻게 휘어져 다가오든, 내 발끝에 담긴 당신의 생(生)을 나는 기꺼이 사랑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