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사이로 길이 보일 때

타로 상담 실전 후기

by 홍반장

명예퇴직을 앞두고, 일상은 평온했으나 그 수면 아래는 늘 일렁였습니다. 손주를 돌보고 남편과 차를 마시는 일상은 소중했지만,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기엔 어딘가 결핍된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맞이한 자유는 때로 망망대해에 홀로 던져진 듯한 막막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마무리를 위해 다시 돌아가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멈칫하던 어느 날, 무심코 타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저 '아무거나'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펼친 카드 위로 다음과 같은 조언이 길을 내어 주었습니다.


"무엇을 찾으려 애쓰지 마세요. 지금은 '아무거나'가 정답입니다. 그것이 평생의 업이 될지 고민하지 말고, 아주 작은 흥미라도 생긴다면 일단 그 길을 따라가 보세요. '검 8'의 눈가리개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옵니다. 그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촘촘한 칼날 사이로 당신이 걸어갈 길이 보일 것입니다."


완벽주의라는 스스로의 감옥에 갇혀 있던 내게 타로는 '가볍게 시작하라'는 열쇠를 건넸습니다. 그 용기로 서랍 속에 묵혀두었던 글들을 모아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고, 단번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타로가 내 마음의 빗장을 뚫고 들어온 순간이었습니다.




그 신비로운 경험은 시누이의 이사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4년째 발이 묶여 있던 전세금 문제로 시름하던 그녀를 위해 카드를 뽑았을 때, 카드는 아주 구체적인 시기를 가리켰습니다. "한 달 이내의 계약, 그리고 초여름인 6월의 이사." 2월 하순에 보았던 그 예언은 정확히 오늘, 집이 팔렸다는 시누이의 떨리는 목소리로 증명되었습니다. 6월 이사 확정. 타로의 언어가 현실의 문장이 되어 나타나는 순간은 언제나 경이롭습니다.


최근 디즈니에서 방영한 "운명 전쟁"에서 운명을 다루는 이들의 경연을 보았습니다. 미래를 맞히는 신통력 때문일까요, 아니면 좋은 결과를 믿고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 때문일까요. 아마도 타로 상담이란 타인의 삶이라는 원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그가 미처 보지 못한 '더 큰 원'을 함께 그려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막막한 칼날 사이에 서 있던 내가 길을 찾았듯, 내가 건넨 카드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손 끝을 거쳐 간 다른 이들의 삶에도, 부디 다정한 피드백이 깃들어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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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9 늦은 밤


"오늘도 저는 타로 카드를 매개로, 누군가의 닫힌 원 안에 다정한 길 하나를 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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