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던함이 내 삶의 가장 크고 따뜻한 원이 되어주었다
남편은 새차를 몰고 나가 백밀러를 박살내고 들어와도 “할 수 없지.” 한 마디로 끝내는 사람이다.
아침이면 잠자던 자리에서 몸만 쏙 빠져나왔다가 저녁에 그 자리에 그대로 몸만 쏙 집어넣던 이라고 했다. 새벽 역전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해서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더니 친구 입학금을 대줘버린 이라고도 했다. 모두 시어머니 말씀이다.
그런 그가 성질 급하고 재빠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나와 결혼했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절대 저 이가 먼저 프로포즈 하지는 않았을 터, 내가 들이대었을 거라고들 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확인하지 않고 그것이 사실인 양 확언을 했다. 그런 확언 앞에서도 그는 말없이 허허 웃고만 있으니 사람들은 더 사실이라고 믿었다. 결국 나는 그 시절, 조신하게 남자의 프로포즈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들이댄 발랑 까진 여자가 되었다.
연애할 때도 그랬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건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결여된 건지 확인하고 싶어 애쓰다 지쳐 떠나도, 그저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프다 말하지 않았고, 힘들다 호소하지도 않았다. 프러포즈 한마디 없이 결혼에 이른 것을 보면, 그의 무던함이 말보다 더 강한 언어였던가?
결혼 후에도 그의 무던함은 계속되었다. 시월드의 낯섦으로 힘들어하면 한번 즈음은 앞에 나서서 나를 숨겨줄 만도 한데 도통 아는 척을 않았다. 내 앞은 고사하고 옆에도 서지 않았다. 물론 시월드 편에도 서지 않았다. 스스로 살아남으라는 듯이 나를 내버려두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낯선 시월드에서 몸 둘 곳을 몰라 이리저리,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스스로 보았다. 내가 넋두리라도 할라치면 그저 묵묵부답이니 말하던 내가 지쳐서 멈추곤 했다. 솔직히 그의 그런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성격이 싫었다.
그런 아들의 입지가 걱정이 되셨는지 시아버지께서 한 말씀하셨다.
“솔이 에미가 참 똑똑해.”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신가 의아해 하는데 남은 말씀을 내어놓으셨다.
“솔이 애비 여기 있는 줄 우예 알고 찾아왔노?”
‘그럼 그렇지.’ 하는데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다음 말씀까지 하시고야 말았다.
“세 살 때 못을 들고 기찻길에 가서 뾰족하게 갈아왔더라. 말도 못하는 것이 얼마나 영특한지!”
“하하하, 세 살인데 말을 못했다고요? 저는 돌 지나자마자 온갖 말을 다 했는데. 솔이가 왜 말이 늦나 궁금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아버님.”
그 후 시아버님은 우리 부부의 서열에 대하여 관여하는 것을 그만두셨다.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나와 의논하기 시작하셨다.
연애할 때부터 우리는 월급의 5%를 책 사는 데 쓰기로 약속했다. 고기 살 돈은 아껴도, 책 살 돈은 줄이지 않았다. 월급날이면 동네 작은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것이 우리들의 유일한 사치였다. 책을 앞에 두고 밤을 새워 밑줄 치며 읽고 메모하던 그 시간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밑줄 치고 메모하는 것까지가 그와 나의 공통점이었다. 나는 보는 즉시 실행했다. 그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실패하며 나만의 방식을 찾아내었다. 반면 그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는 늘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논공 쪽으로 발령을 받아 새벽 출근을 하던 4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쥬스와 과일을 차에 올려주었다. 프리지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결혼기념일이면 어김없이 프리지아 한 다발을 안겨주었다. 34년을 한결같이. 많이 별나고 예민한 나에게 지금까지 한결같이 맞추어 주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설혹 중간에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리 아쉬워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매사 동동거리는 내게는.
‘무던하다’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도가 어지간하다.’, ‘성질이 너그럽고 수더분하다.’고 나온다. 어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 유우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을 하더라도 정도가 어지간한 사람이어서 누구와도 잘 맞고, 어떤 사람이든 ‘그럴 수 있지.’ 하면서 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무던함은 흔들리지 않기에 지속할 수 있고, 조용하지만 단단하기에 오래 갈 수 있었다.
맏아들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시던 친정엄마는 이제 그를 가장 신뢰했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언니 오빠들도 하나같이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알콩달콩 사는 것은 다 남편의 무던함 덕분이라고. 아등바등 애쓴 내 공은 어디에도 없다. 무던한 그가 다 했단다. 부부싸움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무던한 사람하고 싸울 정도면 네가 뭐 큰 잘못을 했겠지.” 하고는 나를 먼저 나무란다. 어디에도 나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가 없다.
사주를 보면 그는 고집이 세단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 고집을 본 적이 없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에서 태수 작가는 “흔들리지 않기에 꾸준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고도 했다. 이것인가 보다. 이런 점을 고집이 세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는 이 책에 나오는 태수 작가의 아내와 많이 닮았다. 자신의 길을 우직이 걸어가는 사람, 다른 사람의 훈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 정한 길을 별다른 불평 없이 걸어가는 사람, 아쉬운 결과에 길게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그다.
남편의 무던함은 바로 그 단단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앞으로 가는 그는 우리 가족의 등대다. 무던함은 쉽게 지치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요란하지 않지만 끝까지 이어가는 힘, 갈등보다 조화를 택하고, 훈수보다 묵묵한 지지를 선택하는 마음. 눈부시지 않았고, 떠들썩하지도 않지만,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마음, 그 무심한 듯 깊은 눈빛,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손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단단한 태도다. 그 무던함이 내 삶의 가장 크고 따뜻한 원이 되어주었다.
"눈부신 섬광은 아니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나를 비추는 그의 무던한 불빛 덕분에 나는 오늘도 길을 잃지 않는다."